[아무튼, 주말] "1920년 1월 1일 0시 2분생이라고?… 2분의 양심은 있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4.13 03:00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화요일은 아침부터 바쁘게 지냈다. 조찬 모임 강연을 위해 수원 상공회의소에 다녀왔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가 10시가 되어 돌아왔다. 저녁에는 내가 10여년 동안 지켜온 화요 모임이 있었다. 거리도 멀고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저녁 7시부터 90분 정도 강의와 대화를 나누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한다.

사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만 99세를 채우고 100세가 시작된 날이다. 쉬면서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내 생일이 있는 한 달은 봉사의 달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하나, 많은 사람들 도움과 사랑을 받아 오늘에 이르게 됐으니 그 정성에 보답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청탁을 받는 대로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금년 4월에는 24회의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고, 5편의 글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보내야 한다. 남는 시간을 나와 가족에게 할당하고 보니까 생일잔치는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100세를 기념하는 모든 행사는 명년으로 미루었다. 미국에 사는 가족도 내년 계획으로 바꾼 모양이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두 친구 생각이 났다. 한 번은 내가 안병욱과 김태길 선생에게 “우리 셋이 모두 동갑인데 생일을 따져 보고 형과 아우의 서열을 정하자”고 제언했다. 나대로 속셈이 있었다.

안 선생은 “꼭 그래야 하나?”라면서도 자기 생일은 음력으로 6월이라고 했다. 김태길 선생은 호적에 있는 생일은 그만두고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서 자기는 선친이 출생신고를 늦게 해 실제 생년월일과 다르다고 했다. 내가 실제 나이라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는 1920년 1월 1일 0시 2분에 태어났다고 우겼다. 그러면서 싱긋 웃는 표정이 ‘할 말 없지?’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그래도 2분의 양심은 남아 있군”이라고 대꾸했다. 안 선생도 내 편이라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맏형이 된 것이다.

지금은 두 친구 모두 내 곁을 떠났다. 형의 행세도 끝난 지 오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두 친구가 살아 있을 때는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니까 생일은 사라지고 기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생일은 삶의 기간과 함께 끝나는 것일까. 기일은 쉬 잊히지 않는다. 내 모친의 경우도 그렇다. 생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세상 떠난 날이 생생히 떠오르곤 한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가족과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기일을 기억해 줄 것이다.

그런데 더 긴 세월이 지나면 사회와 역사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은 생일과 기일을 함께 기억해 준다. 그들의 고마운 마음과 남겨준 업적을 기리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생일을 지니고 살다가 기일을 남기는 사람도 의미 있는 생애를 살았겠지만, 두 날 다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사람은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조선일보 B2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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