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된 '발라드 왕자'

양승주 기자
입력 2019.04.12 03:02

뮤지컬 '루드윅' 주인공 테이
"베토벤의 음악적 성취 대신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 다뤄… 참 외로웠겠죠, 안아주고파"

"참 외로웠을 것 같아요. 귀도 들리지 않고, 인간관계에도 서툴렀으니까요. 위대한 음악은 많이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엔 남은 게 없달까…. 연습 내내 불쌍했고, 안아주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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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배우 테이(36·본명 김호경·사진)의 큼지막한 눈망울이 흔들렸다. 그는 지난 9일 막 올린 창작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연출 추정화)에서 주인공 베토벤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 말 초연된 이 작품은 악성(樂聖) 베토벤의 빛나는 음악적 성취가 아닌 인간 베토벤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와 아픔에 초점을 맞춘다. 테이는 "베토벤의 음악적 열정뿐 아니라 자녀 교육,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며 "관객들도 저마다의 고민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강압적으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던 어린 시절 갑자기 찾아온 청각 장애, 대를 이어 피아니스트가 되길 거부하는 조카와의 불화 등 갖가지 역경이 펼쳐진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집념뿐. 데뷔 16년 차 가수인 테이는 극 중 "피아노가 좋아서 한다"는 베토벤의 말이 유독 위로가 됐다고 했다. "좋으니까 계속 한다는 말, 제게도 꼭 응원처럼 들렸죠."

고향 울산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밴드를 했던 그는 2004년 1집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다.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같은 베개'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내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2년 '셜록 홈즈'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올랐다. 가수들의 오페라 도전을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최종 우승한 것이 계기였다. "가수일 땐 뮤지컬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노래로 대사를 하는 게 억지스러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 때문에 성악 발성을 배우고,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다 보니 선입견이 깨졌어요.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성황후' '여명의 눈동자' 등 크고 작은 극장을 오가며 꾸준히 실력을 쌓았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가창력은 물론 섬세한 연기력까지 갖춘 무대에 관객들 사이에선 '테이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평이 쏟아진다. 테이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수의 이미지를 극복해 내는 게 숙제죠. 우연처럼 시작한 연기지만 지금은 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조급해하지 않고 제 몫을 다 하다 보면 언젠간 '배우 테이'로 봐주리라 믿습니다." 6월 30일까지 서울 동숭동 드림아트센터, (02)512-3052


조선일보 A22면
땅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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