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황제, 샤넬판 '거리의 옷'을 만들다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4.10 03:01 수정 2019.04.10 15:35

[퍼렐 윌리엄스]
샤넬과 협업한 컬렉션 한국서 첫선… 여성·아동 인권에도 헌신하는 스타
"제대로 교육 받은 아이 한 명이 사회를 바꾼다"… 저소득층 지원

이 남자의 눈빛은 시(詩)다.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느릿느릿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1933~2019)와의 추억을 들려줄 땐 찬란한 장송곡이 흐르는 추도사를 읊는 듯했고, '여성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할 땐 선언문을 낭독하는 듯했다. 퍼렐 윌리엄스(46). 미국 그래미상을 12회나 수상하고 1억장 넘는 판매액을 올린 세계적인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그는, '아디다스 퍼렐' 운동화로 유명한 디자이너, 현대미술 큐레이터로 소셜미디어 팔로어만 1000만명에 달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에 맞춰 자신이 디자인한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소규모 제품 발표)을 전 세계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보인 그는 "한국의 에너지는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4년 전 공연장에서도 소름 끼치게 느꼈지만 한국에서만 얻어갈 수 있는 에너지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번 컬렉션은 노랑, 초록, 빨강 등 원색의 후드티와 그의 펜 글씨가 담긴 티셔츠, 청바지, 스니커즈 등 유니섹스 스타일의 스트리트 웨어. 클래식 여성복의 상징인 샤넬에선 파격적인 시도다.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을 전 세계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기념 공연을 한 퍼렐 윌리엄스 /샤넬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을 전 세계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기념 공연을 한 퍼렐 윌리엄스 /샤넬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서울 청담동 샤넬 프래그십 스토어 /샤넬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꿈꾸게' 한 건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였다고 했다. "카를은 마치 다른 시대에서 온 영혼 같았죠. 보통 그런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카를은 현실을 따라잡느라 애쓰긴커녕 성큼성큼 앞장서 나갔지요." 2014년 카를의 단편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인연을 맺은 그는 "카를에게 보낸 신발 스케치가 이렇게 대대적인 컬렉션을 탄생시킨 출발이 됐다"고 말했다.

1억5000만달러(약 1750억원)의 자산 규모를 일군 스타의 시작은 교내 작은 밴드에서 신나게 퍼커션을 두드리는 학생 연주자였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미장일하는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의 3형제 중 맏이로 자란 그는 '범생이'에 가까웠다고 했다. 교육학·미디어·도서관학 등 학위만 4개인 어머니는 퍼렐에게 "무엇을 하든 너를 믿는다"며 자율을 강조했다. 음악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을 때도 실망대신, 잘 해낼 수 있을거라 격려했다. 그가 결성한 밴드 '넵튠스'(1990) 'N·E·R·D'(2000) 등을 통해 성공을 거둔 뒤 내놓은 모토는 '제대로 교육받은 아이 한 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2008년 미국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자선 단체 'From One Hand to Another'를 결성해 매년 1700명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퍼렐은 무엇보다 '여성의 힘'을 강조했다. "여성의 주도적인 결정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이라며 "여성을 드높이고 존경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앨범 'G.I.R.L'을 발표하면서, 2015년 한국 공연에서, 2017년 미국 여성 대회인 '우먼스 마치'를 응원하면서도 '여성이 미래(The future is female)'라고 외쳤다. 1960년대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히든피겨스'(2017)의 제작을 지원하고 음악을 담당한 것도 그 때문. "우린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랐어요. 옛날 노래 가사들이 그랬죠. 어느 순간 깊은 잠에서 깨어났어요. '잠깐, 누가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면 싫을 것 같은데? 내 딸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각성한 거죠."

각종 스캔들이 끊이지 않은 할리우드에서 퍼렐과 아내 헬렌은 재작년 낳은 세 쌍둥이를 포함해 네 아이의 부모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항상 '행복'과 '희망'을 말하는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서비스(봉사)!" 양손을 합장한 그가 이 한 단어만 콕 집었다. "지금까지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날 위해 써왔는데, 이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살고 싶어요."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퍼렐 윌리엄스 /샤넬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퍼렐 윌리엄스 /샤넬

서울 청담동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의 퍼렐 윌리엄스 /샤넬

퍼렐 윌리엄스와 그의 아내 헬렌 /샤넬

퍼렐 윌리엄스와 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샤넬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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