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실천해 온 소통의 본질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04.08 03:17

국민 생명 앗아간 北 도발 대신 우리 대응이 일탈이라는 김 후보
그의 사과는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어차피 겪어야 할 통과의례'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후보자들의 문제들, 급기야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들과 임명이 강행된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심경이 복잡했던 건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물러나야 할 후보자들의 선후가 바뀌었구나."

물러난 후보자들을 편들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과학기술 연구 진흥의 최종 책임자로 부실 학회를 드나들고 연구비로 아들에게 다녀온 인사, 주택 건설 정책 수장 자리에 세 채의 집으로 재산을 불린 인물을 추천한 일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팍팍한 삶에 지친 국민에게 웃음을 주려는 블랙 코미디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난 이들의 문제는 주로 개인사 차원의 흠이었다. 이들 정책 영역의 전문가(technocrat)들이 사생활 문제로 솎아질 때 보다 중요한 공적 자질과 품성 면에서 결함을 드러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살아남았다.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되었을 것이다.

김연철 후보자가 통일 정책 전문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소통 전문가가 아님은 분명하다. 사회이론가 하버마스(W. Habermas)의 용어를 빌리면 '도구적 합리성'은 뛰어날지언정 '소통적 합리성'은 갖추지 못했다. 천안함 피격에 따른 5·24 대북 지원 및 교역 제재 조치를 '바보 같은 제재', 북한의 연쇄적인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개성공단 중단을 '자해 행위'라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을 '우발적 사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을 '어차피 겪었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주장했다. 옮길 수 없는 욕설·막말도 부지기수다. 주변을 살피지 않는 극단의 소신과 신념 무장 없이는 불가능한 발언들이었다.

누구든 '소통의 자유'가 있는데,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론을 펼 수 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통일부 장관 보좌관, 언론사 연구소 소장, 대학 통일학부 교수, 통일연구원 원장 등 주요 위치에서 통일 정책에 영향을 미쳐온 '공인(公人)'이었다. 천안함,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민간인 관광객 피살 사건처럼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불러일으킬 파장과 그 도의적·법적 책임을 몰랐을 리 없다. 혹여 몰랐다면 그 무지함이야말로 자격 미달이다.

미디어 연구자 대니얼 할린(D Hallin)은 사회적 논쟁 사안을 합의적·일탈적 및 논쟁적 사안으로 구분한다. 합의적 사안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사안이다. '국가 안위 및 국민 생명권 수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에 해당한다. 역으로 일탈적 사안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부정적 의견을 지닌 사안이다. '국가 안위 및 국민 생명권을 직격하는 위협'이 그것이다. 나머지는 논쟁적 사안으로 분류된다.

김연철 후보자는 남북문제에 있어서 무엇이 합의·일탈 및 논쟁적 사안인가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에 틀림없다. 김 후보자의 발언들은 그가 46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폭침, 금강산 민간인 관광객 피살, 핵·미사일 도발을 일탈이 아닌 논쟁적 사안쯤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면 이에 맞선 5·24 제재 조치며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합의적 사안도, 심지어 논쟁적 사안도 아닌 일탈적 사안으로 판단한다. 요약하면 그는 한결같이 말해왔다. "국가의 안위를 흔들고 국민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도발은 일탈적 행위가 아니다. 그에 맞선 우리 측 대응이야말로 일탈적이다."

이 발언의 주체가 북한 측 대변인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문제는 그 주체가 우리 통일 정책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급기야 김 후보자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껏 실천해온 소통은 몇 마디 사과로 씻어낼 수 있는 말실수나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 흔들림 없이 유지된 확신의 피력이었다. 그의 사과야말로 진정성(眞正性)과 거리가 먼,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어차피 겪었어야 할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김 후보자를 위시한 논란의 후보자들을 임명할 예정이라 한다. 지난 2년간의 참담한 국정 운영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남은 3년간 이 정부의 코드 정치에는 변화가 없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불통의 시스템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문 정부 2기 내각 출범을 맞아 희망이 아닌 불안감이 이 사회를 무겁게 짓누른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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