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대통령이 말한 '아름다운 복수'의 모순

황대진 정치부 차장
입력 2019.04.02 03:15

'韓國 주류' 교체 주장 대통령은 재산 20억 넘는 변호사 출신
청와대엔 수십억 소유 수석들… 이들이 비주류면 누가 주류인가

황대진 정치부 차장
장관 후보자 7명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TV로 지켜봤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각종 '호화' '특혜' 논란이 쏟아지는 걸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의중을 알 만한 여권(與圈) 핵심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대뜸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이냐"고 했다. 그동안 주류(主流) 사회에 속했던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이 기대 이하라는 것이다. 그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됐을 때 "주류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고 했었다.

'주류'는 '비주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주류는 비판의 대상이고, 비주류는 연민의 대상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비주류'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주류를 교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측근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라고 묻자 그렇게 답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 머릿속에는 대한민국 주류와 비주류가 뚜렷하게 구분돼 있고, 자신도 비주류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한 '아름다운 복수'를 말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를 지갑에 갖고 다니는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더니 '복수'란 말을 썼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 복수가 흔히 말하는 '누구에 대한 앙갚음'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에도 같은 말을 트위터에 썼다. 그는 "대한민국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들'은 주류고 '우리'는 비주류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내로남불'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아직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블랙리스트를 비판했지만 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장차관급 이상 인사 낙마자는 11명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분노한다"고 답했다.

불어에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를 오래 두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우리 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가깝다. 니체는 '르상티망'이 '노예 도덕'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노예는 스스로 하지 못한 일을 두고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상상 속에서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노예 도덕은 근본적으로 적대적 세계, 즉 '주류'를 전제로 한 반(反)작용이다. 자기 자신이 도덕의 중심이 아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르상티망'은 자아가 참다운 자기다움을 잃은 데서 나온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헷갈리면 모든 일이 꼬인다. 대통령은 더 이상 약자도, 비주류도 아니다. 문 대통령은 재산 20억원 넘는 변호사로 무엇보다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다. 틈날 때마다 '기득권'과 전쟁을 치르는 조국 수석은 서울대 교수 직위에 강남 아파트를 포함한 재산이 54억원이다. '30년 무주택'을 호소한 김의겸 전 대변인은 25억원 '건물주'가 돼서 청와대를 나갔다.

니체는 노예 도덕과 반대로 '주인의 도덕'을 꼽았다. 주인의 도덕은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긍정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했다. '고귀한 덕'이라고 했다. 여권 핵심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을 주류라고 긍정하길 바란다.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복수'도 성공할 수 있다.


조선일보 A35면
땅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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