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혼자 사는 노인 챙겨주는 경비원 아저씨… 우리는 한 가족

윤묘희 前 MBC 드라마 '전원일기' 작가
입력 2019.03.29 03:10
윤묘희 前 MBC 드라마 '전원일기' 작가

"문밖에 내어 놓은 것도 없고 초저녁인데 불도 안 켜져 있어서 웬일인가 싶어 전화했어요." 우리 아파트 경비원이다. 복도식이라서 순찰 중 세대의 불빛을 밖에서 볼 수 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 불도, TV도 안 켠 채 라디오만 들으며 누워 있었다. 그가 출근하는 날에는 묵은 신문이나 이런저런 폐기물을 봉지에 담아서 내어 놓으면 고맙게도 순찰 중에 들고 내려간다. 지근에 내 안위를 이렇게 챙겨주는 이가 있구나 싶어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해 왔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시류 따라 독거노인도 많아졌다. 경비원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의 몫까지 해줄 때가 있으니 큰 의지가 되기도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할라치면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들의 업무 중에서 주민들 보살펴 드리는 일이 첫째라고 한다. 덧붙여 "소장님께서도 조회 때마다 강조하시는 걸요"라며 본인보다 한참 연하인 관리소장에게도 깍듯하다.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첫새벽 출근하자마자 보안등이 소등되기도 전부터 비질을 시작하여 주위 청소를 다 마치고 싸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보니 마음뿐이다. 작년보다 시급(時給)이 오르긴 했어도 대신 관리비 부담이 커지는 주민들 입장을 고려해 경비원 휴식 시간을 조정하여 급여는 많이 오르지 않은 실정이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40대 아들과 아내, 세 식구 한 달 생활비로 빠듯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몹시 허둥댄 적이 있다. 바로 위층 세대의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나는 경보음이니 놀라지 말라는 그의 전화를 받고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옆집 화재 사고로 오랫동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생했던 터라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이는 주민과 끈끈한 유대감에서 오는 배려일 게다.

각종 공과금 지로용지를 현관문 우유 투입구에 넣어 주는가 하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정기 소독일, 옥상 물탱크 청소일도 미리 알려주니 많은 도움이 된다. 너무 고마워서 "전화요금을 보태 드려야겠네요" 했더니 "정액제인데 써 봤댔자 그 돈만큼도 다 못 쓰는 걸요"라며 웃어넘긴다. 국민 절반 정도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이 시대에 경비원과 입주민과의 유대감이 이처럼 돈독하다면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가끔 뉴스에서 보게 되는 주민과 경비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이나 끔찍한 사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한마디로 같은 집에서 같은 물 마시고 같은 불 때고 사는 한 식구 같은 사이 아닌가.

쉬는 날 운동하러 산에 갔다가 주워 온 도토리로 쑨 묵이라며 건네주던 선하디선하게 생긴 중년 경비원, 약 안 치고 기른 채소라며 이파리에 숭숭 구멍 난 열무를 못생긴 토마토 몇 알과 함께 건네주며 멋쩍게 웃던 경비원. 돌이켜보면 참 마음 따뜻한 이들과 함께해 왔구나 싶다. 이들의 불침번으로 주민들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고 이들의 보살핌이 있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조선일보 A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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