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얼마안돼 '후임 김연철' 소문… 文정권 믿은 내가 순진"

김형원 기자
입력 2019.03.25 03:07 수정 2019.03.25 03:09

손기웅 前통일연구원장 "버틴 죄로 파렴치범 낙인 찍혔다"

/김형원 기자

손기웅(60·사진)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통일연구원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는 임기 2년 2개월을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손 전 원장은 지난 21~24일 본지 인터뷰에서 "저는 눈치 줬을 때 나가지 않고 버틴 죄로 파렴치범 낙인이 찍혀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손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흔들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내 취임식 날 민주당 정책위원회의에서 '선임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회람됐고, 이후 '문재인 캠프 인사인 김연철 인제대 교수가 후임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면서 "직원들끼리 '손 원장 오래 못 간다'고 수군거렸고, 외부 인사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인맥인 김연철 교수가 원장으로 갈 것 같다'고 귀띔해줬다"고 했다.

손 전 원장은 이후 통일연구원장이 당연직으로 겸직하는 통일부 통일정책자문위원에서 배제됐고, 2017년 11월에는 예기치 않은 감사를 받았다. 엘리베이터 성추행 의혹이 나오기 전이었다. 손 전 원장은 "운전기사, 개인 비서를 비롯한 주변인들을 따로 불러 1대1로 면접하는 방식으로 '원장 성격이 어떠냐' '직원들과 소통은 많이 하느냐' 등의 질문을 했다고 들었다"며 "정작 원장인 제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이상한 표적 감사'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초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사퇴를 종용했던 상급 기관 국무총리실 관계자가 '2017년 12월에 청와대가 이미 원장님의 경질을 결정했기 때문에 (저희도) 통보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2018년) 2월 1일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진퇴를 결정해 달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손 전 원장은 "그 관계자에게 '말씀하시는 BH라는 곳이 청와대인가요, 국가안보실인지요'라고 묻자, '저희는 그냥 인사수석실에서만 통보받는다. 다른 경로는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대화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사하는 대목도 있었다는 것이 손 전 원장 주장이다. 그는 "정부 관계자가 2017년 11월에 일괄로 '그게' 나왔고, 원장님 것은 12월에 한 달 시차를 두고 나왔다고 말했다"며 "제 상황에서는 '그게' 리스트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손 전 원장은 성추행 논란에 휘말린 끝에 작년 1월 자진 사퇴했다. 2017년 12월 송년회 직후, 직원 10여명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남녀 직원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 문제가 됐다. 손 전 원장은 "저는 끝까지 진위를 가리자는 입장이었지만, 정부 측 관계자가 '자진 사퇴만 해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하겠다'면서 도리어 회유했다"며 "연구원에 부담이 될 수 없다는 마음에 결국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손 전 원장은 "블랙리스트를 비난했던 문재인 정권은 다를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며 "인격 살인에 가까운 모욕감 속에서 24년간 몸담은 평생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조선일보 A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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