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만 가면 외교 결례 논란…나사 풀린 靑비서실

박정엽 기자
입력 2019.03.20 13:34 수정 2019.03.20 18:48
靑, 文대통령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말 논란에 "인사말 작성 과정에서 혼선"
의전비서관실 탁현민 전 선임행정관 후임에 홍희경 전 MBC C&I 부국장 임명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중 인도네이사 말로 '인사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교 실수 논란과 함께 청와대 보좌진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거나 공개 행사에 참석했을 때 유독 사고성 실수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방문 때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와 정상회담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말이 아닌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말을 했다. 문 대통령은 "슬라맛 소르"라는 인사를 건넸고, 청와대는 이 표현이 '말레이시아의 오후 인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말은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인도네시아어였다. 말레이시아 인사말은 ‘슬라맛 쁘탕(Selamat petang)’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선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다. 한 네티즌은 "외국 국가원수가 한국에 와서 '곤니치와(일본어로 낮에 하는 인사말)'라고 인사한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과거 말레이시아 연방 성립을 놓고 분쟁을 겪기도 했던 사이다. 그런 나라를 국빈 방문한 외국 국가원수라면 인사말 하나에도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 결례 논란 못지 않게 문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보좌하는 청와대 보좌진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경찬 영산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의 연설, 그것도 해외 국빈 방문에서 대통령의 한 마디는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실이건 외교부건 대통령의 기자회견문 모두 인사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말레이시아 말로 오후 인사가 '슬라맛 쁘탕'이란 건 인터넷을 잠깐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아마추어라 탓하기에도 너무 허술한 실수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의 외교 활동에서 이런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인사말 실수가 알려지기 전에도 또 한 차례 '사고'가 있었다. 청와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이 지난 15일 문 대통령이 방문한 캄보디아를 소개하면서 캄보디아가 아닌 대만의 국가양청원 사진을 사용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이미지 사이트 오류 때문"이라며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지만, 청와대 공식 계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난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0일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혼선이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런 잘못된 인사말을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만큼, 대통령 대외 연설문 준비 과정을 모두 통과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설문 준비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 대통령의 해외 연설문은 외교부 등 담당 부처와 청와대 참모들이 기본적인 내용을 마련한 뒤, 연설기획비서관실이 이를 종합해 틀을 잡는다. 이후 이를 다시 해당 분야 실무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초안을 마련한다. 이 초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되면 대통령이 직접 검토하고 첨삭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된다.

이와 관련, 청와대 안팎에서는 연설문 초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후 첨삭 과정에서 문제의 인사말이 추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제1부속비서관실이나 의전비서관실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이다. 만약 해당국 전문가가 있는 외교부에서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인사말을 넣었다면 더 큰 문제다.

여기 더해 지난 10~16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실 등 청와대 주요부서의 기강이 흐트러진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의전비서관 자리는 작년 11월 김종천 전 비서관이 음주 사건으로 그만둔 이후 3개월 넘게 공석으로 있다가 대통령 순방 3일을 앞두고 새 의전비서관이 임명된 상황이었다. 이때까지 의전비서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홍상우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도 지난 4일 시드니 총영사에 내정된 상태였다. 의전비서관실의 또다른 선임행정관직도 탁현민 전 행정관이 지난 1월 7일 사표를 내 2개월간 공석 상태로 있었다.

의전비서관실은 책임자가 있을 때도 수차례 사고가 있었던 부서다. 김종천 전 비서관은 지난해 6월 조한기 의전비서관이 제1부속비서관으로 이동하면서 빈 이 자리에 승진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2018 포용국가 전략회의’ 행사에서 대통령의 동선 준비 미숙으로 문 대통령이 붙어있던 책상 사이를 장애물 뛰어넘듯 지나는 상황을 초래했고, 같은 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서명 행사 때 '네임펜'을 쓰게 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념사진 촬영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외교부도 작년 11월 문 대통령 체코 방문 때 순방 소식을 알리며 '체코(Czech)'를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로 잘못 표기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

한편 청와대는 20일 탁현민 전 행정관 후임으로 홍희경 전 MBC C&I 부국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홍희경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1992년 MBC C&I의 전신인 MBC 프로덕션에 입사해, 공연·전시·축제 등 이벤트 기획을 총괄해왔다. 청와대는 홍 행정관이 20여 년간 각종 행사 기획 업무를 맡아왔다는 점을 평가해 탁 전 행정관의 후임으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13일 오후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총리 궁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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