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연관검색어란 이름의 '주홍글씨'

곽래건 기자 최아리 기자
입력 2019.03.15 03:02

'性스캔들' 당사자 이름 치면 무관한 여성 이름도 함께 떠
"2차 피해자 확산시킬 우려"

네이버·다음·구글 등 포털 사이트의 '연관 검색어' 기능이 인터넷에 떠도는 거짓 정보를 불특정 대중에게 무차별 확산해 특정인의 2차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 연관 검색어란 인물 등 검색어를 검색창에 입력했을 때 그와 관련돼 나열되는 키워드를 말한다. 대형 포털이 이용자들의 검색 패턴 등을 분석해 자동으로 추출한다.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30)씨의 성관계 영상 불법 촬영·유포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 12일,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에 여성 가수와 배우, 모델 등의 실명을 엉터리로 적은 소위 '정준영 리스트'가 퍼졌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정준영'과 함께 여성 연예인의 이름을 찾아봤다. 얼마 후 포털 사이트에서 '정준영'을 검색하면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이 자동으로 뜨기 시작했다. 연관 검색어로 지정된 것이다.

포털 연관 검색어 형성 과정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김성규
리스트에 오른 여성 연예인들은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관련 연예기획사들은 "터무니없는 루머에 분노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14일에도 포털 사이트에 '정준영'이라는 이름을 치면 여성들의 실명이 나온다.

포털은 피해자가 연관 검색어 삭제 신고를 하면 자체 심의를 거쳐 삭제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거짓 정보가 빠르게 퍼지면서 당사자는 대응하기도 전에 평생 지우기 어려운 주홍글씨를 안고 살게 된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연관 검색어가 검색을 쉽게 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2차 피해 등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관 검색어를 없애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연관 검색어로 피해를 본 사람 중에는 한 대형 포털업체 창업주의 아들 A씨도 포함돼 있다. 이 업체도 연관 검색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A씨가 '빅뱅'의 이승현(29·예명 승리)씨와 연관돼 있다는 내용의 사설 정보지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유포됐다. 승리가 이사로 있다가 마약·폭행 논란이 불거진 클럽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자료에서 A씨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14일 해당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대주주의 이름을 입력하면 여전히 A씨 실명이 연관 검색어로 함께 뜨고 있다.

가수 정준영씨의 성관계 불법 촬영 문제가 불거진 뒤 일부 여성 연예인은 사건 당사자로 지목되며 극심한 피해를 당했다. 경찰이 현재까지 확보한 정씨 관련 자료에도 이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은 없다고 한다. 여성 연예인들과 소속사는 "사실이 아니고,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일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정준영'을 검색하면 여성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 이름을 검색해도 '정준영' '정준영 동영상'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뜨고 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은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도 연관 키워드에 지정돼 포털 검색창에 뜬다. 만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사설 정보지가 카카오톡 등을 통해 퍼지고 사람들이 포털에 검색하면 '인기 검색어'가 된다. 연예·인터넷 매체가 인기 검색어를 근거로 연예인 실명이 들어간 기사를 쓴다. 블로거들이 방문 숫자를 늘리기 위해 기사를 공유하고, 사람들이 이 내용을 다시 검색하면서 검색량이 다시 늘어나고 연관 검색어가 계속 늘어난다. 악순환인 셈이다.

피해자가 요청하면 연관 검색어가 지워질 수도 있지만 꼭 삭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이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자체 심의를 하고, 이 심의를 통과해야 삭제가 된다.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도 관련 기사 등이 남아 있으면 연관 검색어를 삭제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연관 검색어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고는 하지만 포털 업체들이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나영석 CJ ENM PD와 불륜설이 돌았던 여배우 정유미씨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잘못된 정보가 연관 검색어에 뜬다. 둘의 불륜설은 경찰 조사로 허위로 판명됐고, 경찰은 처음 가짜 뉴스를 만든 정모(29)씨 등 9명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포털에서 '나영석'을 입력하면 '정유미 불륜' 등의 키워드가 연관검색어로 검색된다.

인기 여성 아이돌인 B씨는 연관 검색어로 1년 동안 '흡연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에 작은 상자가 찍혔는데, '상자가 담뱃갑 같다. 담배 피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포털에는 B씨 이름과 함께 '담배' '담배 피우는 연예인'이 연관 검색어로 올랐다. B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명했는데도 연관 검색어 때문에 1년 넘게 주위에서 나를 흡연자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명예훼손이 명백한 연관검색어를 방치한 포털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정세의 최정민 변호사는 "연관 검색어도 공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검색어가 노출되는 것이라 포털의 통제·관리가 가능한 영역"이라고 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당사자가 연관 검색어를 실시간으로 계속 모니터링할 수도 없으니 검색어를 띄우는 포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관 검색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함께 뜨는 10여개 키워드. 포털이 다른 사용자의 검색 기록, 관련 기사 등을 자동 분석해 제시한다. 정보의 진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악성 루머를 확산시키기도 한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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