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흔드는 대입 스캔들… "기여입학제까지 손보자"

정시행 기자
입력 2019.03.15 03:02

트럼프 사위 쿠슈너, 250만달러 기부하고 하버드 입학
동문 자녀도 아닌데 돈 낸후 바로 들어가 학벌매매 의혹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대입 비리 스캔들의 불똥이 백악관의 정권 핵심까지 튀면서 미국 사회의 뇌관을 건드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38) 백악관 선임고문이 20년 전 최고 명문인 하버드대에 거액을 내고 입학한 일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마에 오른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파이낸셜타임스, CNN·BBC 등은 트럼프 일가가 막대한 부(富)를 이용해 학벌·인맥·권력을 세습해온 '특권의 사다리'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쿠슈너는 뉴저지의 부동산 개발 업자인 아버지가 지난 1998년 하버드대에 발전 기금 250만달러(약 28억원)를 기부한 이듬해 그 대학 행정학 전공에 합격했다. 당시 입학 경쟁률이 9대1이었다. 쿠슈너의 고교 관계자들은 "GPA(내신)나 SAT(수능) 점수 등 모든 면에서 하버드 갈 수준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2006년 미 부유층의 명문대 진학을 다룬 책 '입학의 가격'에도 사례로 등장했다.

쿠슈너와 이방카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맨 오른쪽) 백악관 선임고문과 아내 이방카 트럼프(맨 왼쪽)가 지난 10일(현지 시각) 세 자녀를 데리고 플로리다에서 주말을 보낸 뒤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내리고 있다. 이들은 이번 휴가에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대학 운영이 자율인 미국에선 기여입학제(legacy admission·동문 자녀 우대)가 인정돼왔다. 명칭에서 보듯 유력 동문이 모교에 장기간 기부·후원을 하고, 후손이 학교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게 입증되면 정원 외로 입학시키는 방식이 보통이다.

프린스턴대에 따르면 '동문 자녀'란 요소는 SAT 160점(만점의 10%) 정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지만, 기부가 곧 입학은 아니다. 예일·스탠퍼드·조지타운대 등에 연 700여 명을 부정 입학시킨 윌리엄 릭 싱어가 "공부 잘해 들어가는 '앞문'은 어렵고, 기여 입학이 수백만달러를 쓰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뒷문'이라면, 난 훨씬 적은 돈으로 합격을 보장하는 '옆문'을 만들었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쿠슈너의 경우는 미국인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학벌 매매'의 정황이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기부 즉시 입학이 이뤄진 점, 아버지 찰스 쿠슈너가 하버드 출신이 아닌 데다, 자신의 돈세탁 비리를 고발하려는 처남을 성 접대로 매수한 죄로 복역한 전과 때문이다. NYT는 "250만달러를 '기부'하면 합법이고, 수만달러를 입시 관계자에게 건네면 '뇌물'이냐"고 했고, CNN도 "특권층엔 전혀 다른 사법 정의가 작동하고 있다. 대입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입시 비리가 터진 12일, 쿠슈너와 이방카 트럼프(37) 부부가 부모 덕에 명문대를 나와 백악관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며 자신들의 제국을 세운 과정을 파헤친 '쿠슈너 주식회사(Kushner Inc.): 탐욕·야망·부패'란 책이 나왔다. 이 책엔 "대통령조차 딸과 사위의 존재가 부담돼 비서실장에게 '쟤들 좀 내보내라'고 했지만 누구도 손대지 못했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쿠슈너 부부가 개인 전용기처럼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쿠슈너가 자신의 사업에 투자한 무함마드 빈살만(34) 사우디 왕세자의 언론인 살해 혐의를 비호한 일, 백악관 입성 후 이 부부의 사업 수익이 연 8200만달러(약 930억원)로 뛴 것도 포함됐다.

배너티페어는 "탈세 등 불법으로 구축한 아버지들의 사업체에 다닌 것 말곤 아무 경력 없는 '자방카 커플'이 미 국내외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라고 했다.

이어 13일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1)가 대입 비리 사건을 조롱하는 트윗을 올렸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는 진보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 출신 배우·디자이너 등이 피의자로 등장하자 "할리우드가 이런 거였나"라고 비꼬았다. 네티즌들은 "당신도 아버지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스쿨에 150만달러(약 17억원)를 기부해 입학하지 않았나" "이방카도 와튼에 기사 딸린 흰 리무진을 타고 다닌 걸로 유명하다"고 격분했다.

미 각계에선 차제에 입시 부정뿐만 아니라 기여입학제까지 손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대학이 계층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데 앞장선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민주당 하원은 각 대학의 기여입학 내역을 매년 보고케 하는 일명 '비리 명단 공개 법안(name and shame bill)'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폴리티코가 14일 보도했다.


조선일보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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