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2조 고교 무상교육 예산 떠넘기지 마라"

박세미 기자
입력 2019.03.15 03:02

교육감들 "정부가 책임져야"2학기 시행 앞두고 예산 갈등

교육부가 오는 2학기부터 고3 대상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시행하기로 하자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고교 무상교육 문제가 '제2의 누리 과정' 사태로 비화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고교 무상교육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예산을 누가 부담할지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는 모양새다.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14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 공동 명의로 "고교 무상교육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포용 국가' 교육 정책의 핵심"이라며 "국가 정책의 추진을 교육감들에게 떠넘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육감은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책임지고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공약대로 이행하면 된다"고 했다.

14일 김승환(오른쪽 셋째) 전북교육감 등 전국 시도교육감이 세종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가 책임지고 고교 무상 교육 예산을 마련하라"고 했다. 정부는 매년 예산 2조원이 필요한 고교 무상 교육을 2021년부터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안이 불투명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예산 떠넘기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지난해 10월 고교 무상교육을 예상보다 앞당겨 2019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방재정교부금을 더 올려 고교 무상교육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법을 개정해야 해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자 교육감들이 "중앙정부가 책임지라"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무상 복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안정적인 재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혼란과 갈등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고교 무상교육을 2019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중학교까지 무상인데 고등학교도 무상교육을 도입해 학부모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게 제도 도입의 취지다. 고교 무상교육은 고교생의 입학금·수업료·교과서비 등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학생 1인당 연간 약 16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1년 당긴다면서 재원은 깜깜

문재인 정부는 지난 대선 기간에는 "2020년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해 2022년 모든 학년에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획이 1년 앞당겨졌다. 지난해 10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1년 앞당겨 전국 130만명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19년 2학기에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선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단계적으로 한 학년씩 확대해 2021년 모든 학년에 전면 도입된다. 고교 1~3학년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데는 약 2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고3만 대상으로 하는 올 2학기에만 38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교육부는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누리 과정 사태' 재판될 수도

무상교육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현재 내국세의 20.46%로 고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상향 조정할 방침이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교육부가 매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교육 예산이다. 현재 국회에 교부금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법만 통과되면 교육 예산이 늘어 무상교육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교육 당국은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가 여야 대치로 공전하고, 정부 내 기획재정부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교부금을 늘리는 건 부적절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교육부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교육부는 한때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국고나 특별회계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매년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 데다 재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무상교육 재원 확보가 불확실해지자 시도교육감들 사이 "누리 과정 때처럼 정부가 또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앙정부와 교육청 간 누리 과정 예산을 누가 부담할지를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졌는데,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일부 교육감들은 "어린이집 누리 과정 예산은 부담할 수 없다"며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무상 복지 정책을 발표할 때는 안정적인 재원 대책을 마련하고 그 뒤에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는 이유로 성급하게 한 학기 당겨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며 "재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제도를 시행하면 제2의 누리 과정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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