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도 웃어야하는 광대… 당신도 그런가요?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3.15 03:02

美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연출가 '리골레토' 연출 위해 첫 내한

귀족의 어릿광대인 리골레토에겐 어여쁜 딸 질다가 있다. 호색한 공작에게 농락당할까 봐 숨겨두지만, 꾐에 빠져 공작이 딸을 납치할 수 있게 도와주고 만다. 질다는 공작에게 버림받는 것도 모자라 그를 대신해 죽음까지 불사한다. 공작의 시체인 줄 알고 끌었던 자루가 죽어가는 딸인 걸 뒤늦게 알고 가슴이 찢어지는 리골레토…. "세상에, 이런 어글리(ugly)한 스토리가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장면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이 달라붙어 있으니!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오페라를 보러 오는 이유지요."

지난 11일 사라 마이어스가 자신의 얼굴 위로 웃는 가면을 겹쳤다. "슬픔에 차 있으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광대 리골레토를 통해 죽을 걸 알면서도 열심히 사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장련성 객원기자
히죽 웃는 가면을 뱅글뱅글 돌리며 사라 마이어스(40)가 말했다. 2006년부터 성악가들 '꿈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 연출가로 활약 중인 그는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라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굵직한 작품과 초연작을 이끈 연출부 스타. 이달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 올리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연출하기 위해 처음 서울에 왔다.

2013년 3월 심장마비로 별세한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은 '오페라 전도사'였다. 2000년부터 13년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과 후원회장으로 오페라 제작비를 댔고, 오페라를 보고 싶어하는 직원들을 위해 따로 티켓을 구입했다. 세아그룹은 이 회장을 기려 2015년부터 음악회를 열었다. 그가 후원한 성악가들을 초청해 아리아와 가곡을 부르는 자리였다. 5회째인 올해엔 규모를 늘려 두 시간짜리 전막(全幕) 오페라를 선보인다. 소프라노 레이철 길모어(질다)와 바리톤 블라디미르 스토야노프(리골레토), 테너 정호윤(만토바 공작) 등이 출연하고, 코리안심포니(지휘 정치용)가 연주한다.

부모는 클래식 좋아하는 열세 살 마이어스를 메트에 데려갔고, 그날 밤 오페라 '나비부인'을 봤다.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 눈 뗄 수 없는 의상, 환상적인 무대까지 모든 게 완벽했어요." 하버드대에 입학해 음악과 철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부터 오페라 연출 수업을 받고, 원작 대본과 오케스트라 악보를 머리에 집어넣었다. 2005년 오페라 '그렌델'의 조연출로 메트에 첫발을 디뎠고, 이듬해 '리골레토' 연출을 맡았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죠. 하지만 그 삶의 핏물이 너무 진해서 헤어날 수가 없어요."

이번 무대에서 그는 웃는 가면과 우는 가면을 양쪽에 각각 붙인 봉, 질다가 흘린 피처럼 곳곳에 배치한 붉은 천을 주요 소품으로 쓴다. 슬퍼도 웃어야 하는 광대라 딸이 납치돼도 웃어야 했던 리골레토가 죽은 딸의 얼굴을 덮은 웃는 가면을 보고 절규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30년 뒤에 봐도 촌스럽지 않을 연출을 해서 훗날 후배들이 다시 봤을 때 '재밌다, 또 해보자'란 말이 나오게 해야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부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전석 초대.


2019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오페라 버킷'=2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조선일보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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