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CEO 명심보감] [31] 유일한 박사의 堅忍不拔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원장
입력 2019.03.15 03:12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원장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柳一韓·1895~1971) 박사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독립운동가였다. 소식(蘇軾)의 '조조론(晁錯論)'에 나오는 이 말은 '굳게 참고 버티어 마음이 흔들리거나 뜻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100년 전 오늘인 1919년 3월 15일 미국 동포들은 '재미한인전체대표회의'를 열어 3·1운동을 이어 나가는 대규모 독립선언대회를 계획한다. 당시 미시간 주립대에 재학 중이던 유 박사는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을 미국 국민에게 알리는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釋明)하는 결의문' 등을 작성·반포·낭독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6년 귀국한 유 박사는 "국민이 건강해야 교육받을 수 있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굳게 참고 버틸 수 있는 견인(堅忍)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 일본 의약품보다 안티프라민 등 유한양행 제품이 더 좋다고 소문이 나자 일제는 집요하게 사업을 방해했고,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다시 도미한 선생은 뜻을 빼앗기지 아니하는 불발(不拔)의 독립운동을 이어 나간다. "나라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것을 신성한 말로 서약하여야 한다"며 미(美) 육군 전략처(OSS) 한국 담당 고문이 된 그는 OSS가 재미 한인을 선발해 특수공작 훈련을 시킨 뒤, 한국·일본에 침투시켜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인 냅코(Napko) 작전 계획을 수립하자 50대 나이에도 고강도 훈련을 받고, 제1조 조장으로 임명돼 작전 명령을 기다리다 광복을 맞이한다.

3·1 운동 100주년이 보름 지난 오늘 기념식만 남기고 독립운동 정신은 희미하게 잊혀 가는 것은 아닌가 돌이켜본다. 마찬가지로 한 해의 3개월이 지나는 즈음 우리 조직은 올해 목표를 선포식에 버려두고 벌써 일상 속에서 잊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견인불발'의 정신은 나라를 되찾는 일이나 조직 목표를 지켜내는 경영 모두에 절실한 것이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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