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트럼프는 北 아닌 한국에서 외교적 승리 구할 것

입력 2019.03.15 03:14

흥행·투자 수익 노린 트럼프… 하노이 회담 실패로 끝나
한국 방위비 분담 대폭 늘려 美 재선 카드로 활용할 수도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지난달 말 '노딜'로 끝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변심한 애인 같다. 사랑에 빠졌다던 김정은이나 북한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듯하다. 북한과 협상을 위해 내놨던 각종 유화책은 자취를 감췄다. 대북 정책 담당자들은 일제히 "우리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에서 한 발짝도 움직인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북 제재를 재정비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다.

트럼프 외교는 오늘 대북 제재 강화를 주장하다가 내일이라도 미·북 수교를 들고나올 수 있는 돌발성을 늘 안고 있다. 다음 주에 느닷없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키고 일어서는 순간 트럼프는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관심을 잃었을 것이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정책은 오로지 트럼프의 관심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트럼프가 긴 안목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북핵 해법을 추구했다고 보는 건 무리다. 북핵과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기이할 정도로 강렬했던 관심은 미국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자신이 풀 수 있을 것이란 야심과 맞닿아 있었다. 북핵 문제는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거의 손대지 않았던 분야였다. 그래서 트럼프는 더더욱 차별화된 승리와 성공을 얻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조건이 있었다. 단기적 성과가 보장돼야 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투자하고 두 번이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세기적 이벤트를 진행한 것은 2020년 재선에 도움이 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흥행과 함께 확실한 투자 수익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은 그에게 진실의 순간이었다. 북한 비핵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포스트 하노이 상황은 한·미 동맹에도 진실의 순간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완전한 비핵화 빅딜'과 김정은의 '제재 해제 빅딜'이 부딪쳐 회담이 무산된 이후에도 한국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제재 면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노이 이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강경 모드로 전환한 워싱턴에선 "이러다 한·미 동맹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포스트 하노이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한·미 동맹"이라고 말한다. 백악관이 오래전부터 북한 처지를 대변하고 해명하는 청와대와 통화하는 걸 불편해한다는 건 워싱턴에서 비밀도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공식적으론 "한·미 공조 문제없다"고 하면서도 워싱턴 전문가들 옆구리를 찔러가면서 "한·미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걸 대신 지적해달라"고 한다는 것도 다 알려진 얘기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린 트럼프에겐 오히려 한국이 더 손쉬운 외교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안일 수 있다. 우선 1년 단위로 동맹을 시험할 방위비 분담 협상 문제가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라는 외교적 승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더 들어맞는다. 이미 '주둔 비용+50%(프리미엄)'라는 분담금 대폭 인상 공식이 거론되고 있다. 기한을 1년으로 줄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트럼프에게 재선 때 아쉬우면 쓰라고 마련해준 외교적 카드나 마찬가지다.

한·미는 피로 맺은 동맹에서 돈을 더 내야 가까스로 유지되는 동맹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트럼프 시대엔,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동맹국 한국도 트럼프의 외교적 성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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