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 정부가 탈북 단체 억압한다'고 美 비판 받는 세상

입력 2019.03.15 03:20
미 국무부가 13일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탈북민과 탈북 단체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서 탈북민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에 대한 비난을 줄이라는 직·간접적 압력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사례로 탈북민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고, 재정·운영 정보를 내놓으라 하고, 대북 전단 보내기를 차단한 사실 등을 적시했다. "한국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탈북민들에게 북 비판을 삼가라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탈북민들이 정부 대북 정책에 비판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중 연설에 참가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알려졌다"고도 했다. 탈북민 출신 본지 기자의 판문점 취재가 불허된 것도 '언론 자유 침해'라고 했다.

실제 이 정부 들어 탈북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다. 한 탈북민 단체 대표는 운영비를 마련하느라 대리 운전을 하고 있고, 1980년 세워진 첫 탈북민 단체는 지난 1월 사무실을 40평에서 10평으로 줄였다. 황장엽 전 비서가 만든 단체는 창립 20주년 행사도 열지 못했다. 탈북민 출신 영화감독은 우파 집회 TV 화면에 잠시 비쳤다가 정권 지지 세력에게 '좌표 찍기'를 당해 운영하던 냉면집을 닫아야 했다. 어느 대학 강사는 탈북 학생이 듣고 있는데도 "통일되면 탈북자는 남북 두 총알에 맞아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 주민을 노예로 짓밟은 김정은은 '위인'으로 칭송받고 참혹한 북에서 탈출해 진실을 밝히려는 태영호 전 공사는 겁박당한다.

한 고위 탈북민은 "요즘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유엔 대북 제재위는 북의 사치품 금수 위반 사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나란히 벤츠 리무진을 타고 손 흔드는 사진을 보고서에 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들어간 사진이 북 불법 행위의 증거물로 사용된 것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김정은은 문 대통령보다 나은 대리인(agent)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귀중한 우리 국민인 3만 탈북민은 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있는 한국에서 숨을 죽여 살고 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


조선일보 A39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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