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젖꼭지+똑딱단추=김호석의 '남영동 고문실 문'

뉴시스
입력 2019.03.14 17:00
김호석,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이 그림, 무엇으로 보이는가?"

한국화가 김호석(62)이 100명에게 물었다. 절반은 '어머니의 젖꼭지'라고 했고, 나머지는 '똑딱 단추'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그림 제목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왜?'라는 반응을 보이다 말이 모아진다. '똑딱 단추'라고 했던 사람들은 "맞아요 음과 양이 세상의 원리네"라고 하고, '어머니 젖꼭지'라고 한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으니 세상의 문이 맞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문을 그렸다"고 했다. 외시경이 거꾸로 되어 있는 고문실 문이다. 밖에서 안을 보는 감시하는 도구다. 이 그림을 그리기전 대공분실을 20여 차례 찾았다.

"사람들에게 그 문을 그렸다고 말하면 그때서야 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실제로 보지 못했으니 알수 없다"고 한다.

그는 이 지점을 말하고 싶었다. "알 수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냐'와 '진실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김 화백은 이 그림을 포함해 수묵화 신작 50여점을 제주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13일 서울에서 만난 김 화백은 '보다'를 타이틀로 한 이번 전시에 대해 "수묵화가 지닌, 원래 뜻을 그리자, 핵심에 접근하자고 작업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수묵화는 사물의 뜻에 의탁하여 정신을 그린다. 흑과 백이라는 대비를 통해 조화를 추구한다>"

그는 "자기합리화에 대한 아큐가 넘치는 사회속에서 내 그림을 그려야 하고, 내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정치이념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문화의식의 문화가 묻혀져 반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 부분에 통탄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문화의 시대가 오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정치문제일까? 우리 수준의 문제일까?"

결국 "남이 변해야 된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는 그는 "시대를 그려보자. 은유를 깊게 해보자"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형상에 집중했다면 형상이 아닌 여백을 그리자"며 화폭에 앉았다. 낮과 밤이 자신을 감춘 세계, 흑과 백이 전되된 빛의 세계, 번뇌와 고통을 오롯이 승화한 검고 흰 세계를 그렸다.


그런데 또 '여백의 그림'은 이야기를 낳았다.

그림 표구사에서 생긴 일이다. "이 그림은 간지(연습용 종이)지, 간지"라며 표구사 주인은 "어디를 잘라야 하냐"며 어리둥절했다. 그는 "여백에 대한 개념이 넓지 않더라"며 그래서 전시 제목을 '보다'로 지었다"고 했다. "나는 보았는데, 그들은 못 보았다"는 뜻을 담았다.

여백이 많은 그림, 공중에 붓 장난 한 것 같은 수묵화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겠다는 문의도 많다. 하지만 김화백은 "민주화사업회에 기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한 생선, 나무 갈퀴같은 닭발, 뒤집어진 바퀴벌레, 수염달린 미꾸라지등 미물들이 여백에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차있다.

엷은 먹맛이 텅빈 울림을 더한다. 그는 "가장 강력하고 사나운 그림일수록 먹은 옅고, 보는 사람에게도 여운을 길게 남긴다"며 "옅은 먹은 맑고 시원해서 사람과 사람을 통섭하는 데 최고의 경지라고 한다" 전했다.

치밀한 그림은 치열한 관찰력에서 나온다. 여주 작업실에서 만난 생물들을 자세히 보며 화폭에 담아냈다. "자생적 화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 현장들이 그림으로 나오고 있다. 키우면서 그린다."

1986년 데뷔해 전통 초상화의 권위자로 꼽힌다.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였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을 그려 인기 작가가 됐다. 그러던 2007년, 갑자기 "상업화랑과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업화랑은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림만 싹 없어지고 돈도 많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그림이 모아지면 차라리 공공미술관에서 전시하자는 다짐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안파는 그림만 그린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초대전(2015), 인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2017)에 이어 이번 전시는 제주에서 처음 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이 전시에는 처음 그린 자화상과 자신의 아버지, '조선 정신'을 강조한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 선보인다. '근거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3.1운동 100주년 초대전에 맞춰 그린 그림이다. 4명의 초상화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게 특징이다. "3.1운동을 항거에 방점을 찍지 말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눈뜨고 봐야하고, 선비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불의가 아니고 표상일 뿐이다." 그는 "부패를 고발하고, 민중의 정신을 깨우쳐주는 것이 3.1 정신의 핵심이라는 것"을 그림으로 말하고 싶었다.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이 강한 그는 집안 덕분이다. 아버지는 유학자로 실천 하는 삶을 살았고, 할아버지는 조선 정신이 무엇인가를 아끼신 분이었고, 고조 할아버지는 일제늑약에 항거해서 자결하신 분이었다. 어릴적부터 조선 정신, 의로움에 대한 것이 교육의 일환이었고, 그 뿌리를 그리고 싶어 수묵화를 선택했다. "나는 줄곧 한국인의 얼을 표현하기 위해 집중해왔고 세상의 이치를 궁구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 초상화가로도 유명하다. 노 대통령 퇴임 직전 청와대의 의뢰로 2007년 청와대에서 직접 만나 그림을 두점을 그려, 2008년 퇴임 직전 전달했다. 두루마기 옷을 입은 모습과 양복을 입은 초상화다. 당시 '조선 정신'이 투철한 그는 "두루마기 옷을 '조선 옷'이라고 말한 노 대통령이 인상이 깊게 남아 있다"고 했다. 또 노 대통령이 왼쪽 눈썹에 난 흉터까지 그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하면서 "권양숙 여사와 중학교때 만나 연애할때 팔짱끼고 가다 넘어진 상처라면서 그것까지 어떻게 잡았냐"고 했더라는 것. 그는 MB 정권때 '노무현 초상화'그린 '노빠'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는 권양숙 여사의 뒷 모습 그림도 있다. '뒤를 보다'를 제목으로 옷 고름만 빨간색이 눈길을 끈다. 김 화백은 "평생 동안 좌파, 좌익 소리를 들었던 권 여사가 청와대 의자에 앉아있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이번 제주돌문화공원 전시를 위해 1년 6개월동안 작품 제작에만 매달렸다. 그림 공부한지 50여년간 최고로 집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한껏 다 볼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 앞에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 낮은 희고 밤은 검다." 수묵으로 맑음을 지향하고 자기 순화를 통해 천연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담으려는 것이 부질없음을 안다. 그래서 "다 담으려 하지 않았다." 전시는 4월21일까지.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