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音에 세계가 반하리라, 첫 활을 켰던 세 살 때 알았죠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3.14 03:01 수정 2019.03.14 11:05

율리아 피셔… 獨 '바이올린 여왕' 단독 인터뷰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앙코르곡을 연주하는 피셔. /빈체로
먹빛 드레스를 발끝까지 감싼 '바이올린의 여왕'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활을 그었다. 러시아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와 런던 필하모닉이 뒤덮은 무대. 모래빛 금발을 묶어 이마를 훤히 드러낸 율리아 피셔(36)는 붓처럼 우뚝 서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런던 필 내한 공연은 피셔의 말처럼 "관객들 반응이 완벽했고, 오케스트라와 호흡도 좋아서"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활을 붓질하듯 현에 슬쩍슬쩍 대기만 하면서 여리고 섬세한 기운을 만들어낸 피셔는 뒤로 갈수록 격한 활놀림으로 대담한 사운드를 쏟아냈다. 정확한 운지(運指), 화려한 테크닉으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 그는 2년5개월 전 첫 내한 독주회 때와 비교해도 카리스마가 뚝뚝 묻어났다.

"한 번도 떨어본 적 없어요." 정경화와 아네조피 무터에 이어 세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로 등극한 피셔는 여유로웠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예후디 메뉴힌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등 저명한 지휘자들과 함께했고, 지난해 봄엔 뉴욕 카네기홀에서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브람스를 협연해 찬사를 받았다.

공연 직전 만난 피셔에게 "지금처럼 이름난 연주자가 될 줄 알았느냐"고 묻자 "물론!"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놀려도 좋아요. 세 살 때 활을 쥐었고, 아홉 살에 아나 추마첸코의 제자가 됐고, 열두 살에 기교적으로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단 걸 깨달았어요. 돈도 많이 벌겠구나 확신했죠(웃음)."

율리아 피셔는 “연습과 연주를 뺀 나머지 시간엔 동료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야 나만 잘났다는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죠.” /빈체로

비법은 '연주를 즐긴다는 것!' 정경화가 10대 시절 하루 14시간씩 연습했다는 얘기에 "파워 우먼"이라며 혀를 내두른 피셔는 "나는 다섯 시간씩 연습했다. 한눈도 자주 팔았다. 그러나 활을 쥐기만 하면 1초라도 온전히 몰입했다. 어설프게 해서 어정쩡한 수준에 멈추는 걸 가장 경계했다"고 말했다.

지난 내한 독주회 때 그는 당시 반주자였던 마르틴 헬름헨과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헝가리 무곡 5번을 앙코르로 쳤다. 그만큼 피아노 실력도 탁월하다. "'왜 난 바이올린을 했을까' 지금도 후회할 만큼 영혼의 악기는 피아노"라고 힘줘 말했다. 좋아하는 음악가도 전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다. "하지만 엄마가 쥐여준 악기는 바이올린이었죠. 선택을 해야 했고, 두 달을 매진했더니 콩쿠르에서 우승했어요." 그 후 그의 길은 바이올린이 됐다. 원할 땐 피아노도 칠 수 있으니 "충분히 멋진 삶"이라고 했다.

겁날 것 없는 그에게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피셔는 "매일 밤"이라고 조용히 답했다. "악보와 씨름하고,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박수 받는 날들을 반복하지만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세상에, 내가' 하며 머리를 처박죠."

피셔는 이날 2부에서 런던 필 단원인 양 제1바이올린 파트 맨 뒷자리에 앉아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해 '깜짝 선물'을 건넸다. 아무도 피셔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활을 켜는 품새, 왼손을 쓰는 모습이 멀리서도 남달랐다. 혼자서도 빛나는 독주자가 악단의 일부로 들어간 이유는 뭘까. "연주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요. 매일 새로운 음악의 아름다움을 청중에게 전해줄 수만 있다면 이름 없는 단원으로 묻혀도 좋아요."

그날의 피셔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오는 7월 다시 내한해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필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율리아 피셔&드레스덴 필하모닉=7월 6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7일 오후 5시 아트센터 인천, (02)599-5743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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