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복 같다고? 미세 먼지와 싸우는 중입니다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3.12 03:01
"영화로 보던 '인터스텔라'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줄이야." "미세 먼지 수치 확인하랴, 방지용품으로 풀(full) 착장하랴 할 일이 더 늘어났어요." "청정지역으로 이사 고려하고 계신 분 없나요? 심각하게 고려 중이에요."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부터 시작한다. 미세 먼지로 시작해 미세 먼지로 끝나는 하루. 요즘 최고급 동네는 집값 비싼 곳도 학구열 높은 곳도 아닌, '청정 호흡권'을 주는 공기 좋은 곳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마스크 사는 것도 부담이라며, '미세 먼지 빈부 격차'라고 푸념까지 나온다. 직장인 임수연(40)씨는 "공기 청정기, 스타일러, 공기정화 식물, 자동차용 공기 청정기, 목에 거는 휴대용 청정기, 미세 먼지 센서, 각종 필터, 애완견용 펫스크(동물용 마스크)까지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이번 달 월급의 절반을 탈탈 털었다"며 "식비를 줄이고 맑은 공기를 사들여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과거 ‘반항아’로 치부되던 마스크 패션이 재난 같은 ‘미세 먼지’ 때문에 패션계의 트렌드 중심이 됐다.(오른쪽 사진) 왼쪽 작은 사진은 요즘 ‘미세템’ 중 하나로 각광받는 애완견용 마스크인 ‘디어도그 펫스크’. /투타임즈유·지마켓

G마켓이 지난 4일까지 최근 닷새 동안 주요 제품 판매량을 전주 대비 비교한 결과 미세 먼지 창문 필터 판매량은 300%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용 공기청정기는 188%, 산소발생기도 238% 늘었다. '소독'도 일상화됐다. 옥션에서 렌즈관리용품 등 눈 건강 관련 용품이 135%의 큰 폭으로 성장했고, 오존 살균기는 83%, 구강청결제도 58% 늘었다.

화장품에선 '안티폴루션'이란 장르가 생겼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신진섭 책임 연구원은 "미세 먼지가 피부에 각종 스트레스와 염증을 유발하는 등 피부를 손상하고 노화를 촉진한다"며 "연구소에서 피부 2만5000여 개 유전자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피부 장벽을 약화시키고 손상한다는 사실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프리메라'의 '퓨어 브라이트닝 유브이 프로텍터'는 미세 먼지가 달라붙는 걸 줄이고, 피부를 회복시켜준다. '아이오페'의 '모이스트 클렌징 휘핑 폼'은 미세 먼지에 의해 발생하는 염증 인자를 낮추고 항산화효소를 활성화하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예전 같으면 '반항하느냐'라는 의미의 마스크도 이젠 패션이 됐다. 보건용 마스크 전문회사 필트는 치솟는 인기에 패션이 가미된 마스크를 내놓았다. '깔 맞춤 마스크'라는 애칭으로, 최근 신민아가 모델로 기용되기도 했다. 의류에서는 '스타일'이 변화하고 있다. 최대한 노출 범위를 줄이기 위해 입까지 올라오는 재킷이 인기다. 코오롱스포츠의 '웨더코트'는 올 시즌 내놓자마자 판매율 30%를 기록하며 다른 의류 판매율의 3배 성장을 보였다. 노스페이스 역시 미세 먼지 유입을 막는 멤브레인 등 특수 소재를 가미한 재킷을 새롭게 선보였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사람 같은 포즈의 의상에 패션계에선 'warcore(war+hardcore·전쟁을 연상시키는 의상)' 혹은 '재앙 패션'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재앙(apocalypse)을 쇼핑하다"라는 제목으로 "각종 전쟁, 대기오염 등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가 늘어나면서 피폐화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패션이 런웨이를 물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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