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영부인의 태극기 패션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3.12 03:01
지난달 28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야제'. 그동안 흰색이나 베이지, 옅은 하늘색 톤 등 단색의 밝고 차분한 의상을 주로 입었던 김정숙 여사가 경쾌한 컬러를 입었다. 빨강, 파랑, 흰색 색면에 검은색 격자무늬로 구획을 나눈 의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추상화가 '칸딘스키'니, '몬드리안' 작품을 연상케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양해일 디자이너의 의상. 태극기와 한국 전통의 책가도(冊架圖)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후 '여사님표 태극기 패션'이란 애칭도 붙었다. 가로세로 균일한 격자 체크를 태극기 '건·곤·감·이' 문양의 사선 빗금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체크무늬는 체격을 커 보이게 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사선으로 처리할 경우 시선이 분산돼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 6일 아세안 3개국 유학생 초청 행사에 ‘태극기’를 형상화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 김정숙 여사. /연합뉴스

김정숙 여사는 패션에 익숙한 편이다. 어머니는 수십년간 포목점을 했고, 미국에서 활동한 언니는 미 패션공과대학(FIT) 출신 패션디자이너다. FIT 출신 젊은 디자이너 이서정의 한복이나 한글 적힌 샤넬 의상 등을 착용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취임식, 첫 방미 행사 등 주요 행사엔 취임 이전부터 입었던 양해일 디자이너의 의상을 골랐다

'그저 옷'일 뿐이라지만 정치인이나 정치인의 아내가 입는 옷은 언제나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정숙 여사의 차림을 보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 자주 입는 단색 투피스나 프랑스의 브리지트 마크롱이 애용하는 긴 재킷과 치마를 자주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이자 '큰누나' 같은 푸근한 리더십의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듯하다.

미국의 로라 부시 여사는 회고록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기 위해 구입해야 할 브랜드 의상 숫자에 놀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는 것은 필수가 됐다.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 입성 전에 살았던 시카고에서 자주 가던 의상실의 종업원이었던 메리디스 쿱을 백악관 스타일리스트로 고용했다. 이후 중저가 '제이 크루'부터 아시아계 젊은 디자이너 '타쿤'이나 '제이슨 우' '프라발 구릉' 등 발품 팔아 고른 작품을 다수 입어 다양성을 고려한 '포용'이란 이미지를 얻었다. 멜라니아 트럼프도 최근 아동복지 캠페인 '비 베스트'를 선보이면서 드레스로 치부되는 사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최근 패션계를 뒤덮은 '패션은 메시지'라는 모토는 어쩌면 대통령 부인들이 먼저 시도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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