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재벌개혁… 워런 "아마존·페북·구글 분할"

이기우 기자
입력 2019.03.11 03:00

"거대 IT기업 경쟁 없애버렸다… 불법 M&A 되돌리는 규제 신설"
업계 "성과 짓밟는 극단 정책… 진보적 가치와 어긋난다"

미국 야당에서 2020년 대선 공약으로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분할해 규제하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자본주의의 보루와도 같은 미국에서 사기업 분할 등 대기업을 손보겠다는 대선 공약이 나온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친(親)기업 성향 트럼프 정부에 대한 반발, IT 기업에 대한 부(富)의 집중과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 등에 대한 견제 심리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의원들의 뚜렷한 '사회주의 성향'이 거론될 정도로 민주당 내 좌편향이 심화된 현상을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9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문화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8일(현지 시각) "오늘날 거대 IT 기업들은 인수합병과 독점적인 거래 공간을 활용해 경쟁을 없애버렸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을 분할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발표했다. 워런 의원은 "기업은 야구팀과 같다. 구단을 감독하고 소유도 하고 직접 게임도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IT 기업들은 정보·물품 유통뿐 아니라 생산과 제조, 판매까지 하고 룰도 직접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되면 불법적인 인수합병을 되돌리는 규제 기관을 신설할 것"이라며 '불법 인수합병'의 사례로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와츠앱(메신저) 합병, 아마존의 홀푸드(유기농 식품 체인) 인수합병 등을 들었다.

미국에서 강력하게 시행되는 반(反)독점법에 따라 거대 기업이 분할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미국 통신을 독점하고 있던 이동통신사 AT&T의 각 지역 자회사들의 내부 거래에 대해 검찰이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법원 선고로 개별 회사로 분리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 등 정치인이 특정 기업들을 찍어 '저격'한 것은 전례가 없다. IT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존·페이스북·구글 등이 소속된 협의체 '컴퓨터와 의사소통 산업협회' 에드 블랙 회장은 "높은 성과를 뽑아내는 분야에 대한 부당하고 극단적인 제안"이라며 "진보적 가치와도 어긋난다"고 했다.

워런 의원은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상법(商法)을 강의한 좌파 성향 교수 출신으로,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때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사를 공격하며 '대기업 저격수'로 떠올라 정치권에 입성한 인물이다. 마르크스를 연상시키는 극단적 주장으로 큰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최근 민주당의 급진적 좌파 의원들의 부상과 맞물려 대선 국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판 '재벌 개혁' 공약도 이런 민주당의 좌클릭에 기대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지도자들은 2016년 대선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돌풍 이후 2018년 중간선거의 '진보적 승리'에서 교훈을 얻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샌더스·워런을 필두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코리 부커 상원의원(뉴저지) 등 다른 대선 주자들도 부유세 부과,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화, 현금성 복지 같은 좌파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IT 기업들이 소속된 싱크탱크 '정보 기술과 혁신 재단'은 "(기업 분할이) 2020년 대선에서 단순한 소수 의견일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워런의 공약이 공식화될 경우, 민주당과 실리콘밸리의 오랜 밀월도 끝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진보주의와 글로벌리즘을 내세운 민주당에 서부의 IT 기업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파트너이자 선거 자금을 대주는 주요 통로였다. 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창 떠오르던 샌프란시스코의 구글 본사에서 유세를 펼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IT 기업들에 대한 미 여론은 크게 악화됐다. 2016년 대선 당시 페이스북 이용자 수십만명의 정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캠프 측에 이용되도록 방치했다는 '개인 정보 유출 스캔들'과 해킹 사고가 잇따라 일어났다. 페이스북은 각종 보안 강화 방침을 내놓고 있지만 젊은 층의 '페이스북 탈퇴' 운동이 이어지는 등 불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세계 1위 갑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의 불륜 스캔들, 구글의 이용자 사생활 감시 논란 등도 계속된다. WP는 "워런의 공약은 IT 기업들의 사회적 명예 상실을 반영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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