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심이 법 위에 있어선 안 된다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前 가디언紙 서울 특파원
입력 2019.03.11 03:17

한국 정치 리더십의 결함은 민심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것
민심은 감정적이고 때론 불공정… 법·국익보다 앞세우면 안 돼
민심도 법 따라야 한다는 것… 지도자들 용기 갖고 보여줘야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前 가디언紙 서울 특파원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 일명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법원 판결을 공격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민얼굴을 폭로한 순간이었다. 물론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정치인 개개인에겐 이번 판결에 대해 '실망'을 표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법치주의 사회에서 정당이, 그것도 여당이 사법부를 비판한 건 사법부가 일을 못해 욕을 먹어 마땅하거나 혹은 여당이 법치를 존중하지 않거나 혹은 둘 다다.

드루킹 사건이라는 특정 사안에 대해 법원이 탄탄한 증거를 토대로 적법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실 한국 법원은 왕왕 증거도 없이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유죄판결이 나온 것도 아니고 구속 재판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피고인을 구속한다. 턱없이 불합리한 판결도 때로 나온다. 국민이 법원 판결을 의심하는 이유다. 그렇다 해도 더불어민주당이 보인 반응은 마치 버스 운전사 노조가 경찰에게 "빨간불에 달렸기로서니 왜 우리 조합원을 체포하느냐"고 항의하는 격이다. 여당뿐 아니다. 윤기찬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의 '김경수 구하기'는 헌법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 건 축구 팬이 상대팀이 반칙 판정을 받으면 "심판 판정을 존중하라"고 외치다가 5분 뒤면 정반대로 고함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법의 입지가 허약한 게 한국 정치 시스템의 핵심적인 약점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뜻에 맞춰 법 없이도 굴러간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법에 따라야 하고, 모든 정부기관이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리더들이 법이 아닌 무엇인가를 좇고 있는 게 된다. 그게 도대체 뭘까? 답은 '민심'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권좌에서 떨려 난 이래 민심은 이 나라에서 신비로운 영도자 역할을 해왔다. 많은 사람이 민심은 국민 영혼의 표현이라고, 민주적이고 심오하고 선한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민심은 그렇게 고매하지 않다. 민심은 특정한 이슈에 대한 대중의 감정이 결정적인 규모에 이르러 시민 전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여겨지는 상태다. 민심은 감정이라 논리적이지 않다. 실제로는 다수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 때조차 있다. 민심은 감정이라 불공정하고 일시적일 수 있다. 집단 괴롭힘이 되기도 한다. 특정 시각이 민심이 되면 반대하는 시각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 그래서 민심은 때로 상스러워지고 폭력을 부추긴다. 로마인은 예수를 풀어주고 싶어했지만 군중이 원하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다만 민심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정치 시스템의 약점은 정치 지도자와 사법부의 결정권자들이 민주주의는 민심에 복종하길 요구한다고 믿는 데 있다. 가장 좋은 예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민심이 돌아서자 국회·헌재·법원 같은 민주주의 실행 기관들이 민심의 요구에 복종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적들조차 '징역 25년' 판결이 법리적으로는 터무니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대다수가 판결을 지지했다. 민심의 감정적인 분노에 걸맞은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 민심은 감정적이고 불공정하고 일시적이다. 새로운 이슈가 나오면 금방 다른 데로 간다. 민심이 수그러들면 문재인 대통령이 개입해 전임자를 사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래서 나온다. 우리 모두 일이 그렇게 갈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을 그런 식으로 쓰는 건 정치가 법을 모욕하는 것이다.

민심이 곧 민주주의라는 건 철학적인 오류다. 관료, 정치인, 검사, 판사가 민심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이성적인 법과 국익에 앞세우는 건 민주사회의 리더라는 본분에 어긋난다.

바로 여기 숨겨진 진실이 있다. 사실 결정권자들은 민심에 관심 없다. 비판받을까 봐 민심에 응할 뿐이다. 한국 정치 리더십이 가진 이 같은 결함이야말로 민심이 대규모 시위로 민주주의를 구현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서울 거리가 온갖 이슈를 들고 법원 대신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로 꽉 찼는지 설명해준다. 그들이 하는 일, 또 더불어민주당이 드루킹 사건을 놓고 하는 일은 민심을 흥분시켜 사법부와 결정권자들을 조종하려는 행보다.

우리들 개개인이 법에 복종하듯이 민심도 법에 따라야 한다는 걸 오피니언 리더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용기를 갖고 보여줘야 할 때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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