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부동산 가격 하락, 좋아만 할 일일까?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입력 2019.03.09 03:12

상가 공실 늘어 임대료 떨어지고 취직 안돼 아파트 수요 감소하는데 수요 억제 몰두하는 것 옳은가
지방 부동산 재난 수준으로 떨어져 금융기관 위기로 번질 수도
국민 바라는 건 가격 안정 아닐까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임금 상승(인상이 아니라)과 부동산 가격 안정은 경제정책의 변함없는 목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고 불로소득과 빈부 격차 확대의 원인이 되는 등 백해무익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출범 후 부동산 대책의 강도를 점점 높여온 결과 불패라던 강남 집값마저 잡히는 조짐이 보인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부세·양도세 중과 등 임기 전반의 수요 억제 중심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임기 종반에 공급 확대만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필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여·위례·송파·판교 등에 2기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 덕분에 그다음 두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걱정은 거의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의 교훈을 잊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출범 1년 반 만에 공급 확대책을 병행하기로 하고 임기 중에 효과를 보려고 서두르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면 부동산 가격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장 매물과 상가와 오피스 빌딩의 공실이 늘어나서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떨어지는 것을 두고 영세 사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일까? 젊은이들이 취직이 안 되어 결혼도 못하고 당연히 집을 살 수가 없어 아파트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격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모든 부동산의 수요가 줄고 있는데 정부가 계속 수요 억제책과 공급 확대책에 몰두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며칠 전 감정원 발표에 의하면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8개 도의 아파트 값이 2016년 2월부터 37개월째 내리막이고 이 기간 중 평균 8.51% 내렸다고 한다. 거제 -34.3%, 창원 -19.5%, 군산 -11.7% 등의 경우는 이미 재난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부동산 담보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속성상 금융 위기로 번질 수도 있겠다. 필자는 1997년에 토지 공급을 대폭 확대하여 땅값을 떨어뜨릴 요량으로 헌법재판소에 그린벨트가 위헌이라고 판결해 달라고 설득하고 다니다가 금융위기 조짐에 포기한 적이 있다. 지금 같은 걱정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같은 기간에 서울은 15.8% 올랐으니 강남은 더 올랐을 것이고, 그러니 강남 집값만은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강남 집값만 떨어뜨릴 방법이 있는가? 종부세 부담을 늘려도 사람들은 다른 집을 팔지 강남 집을 팔지는 않는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수요 억제책은 가격이 올라도 내버려 두는 것이다. 가격을 안정시켜 주는 한 수요는 줄지 않는다. 그 비싼 값에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데 그 값을 싸게 해 줄 방법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비싼 집을 굳이 사겠다면 호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사게 하는 것이 더 정의의 개념에 부합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 집값을 안정시켜야 하는 것일까? 국민이 배 아픈 문제까지 나라가 해결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부동산 가격은 그 부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나 편익의 자본 환원 가치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만한 돈을 치를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다. 부동산은 국민연금이 그 자산의 8%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온 국민의 소중한 재산이며 주식과 함께 국부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막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해가면서 그 가치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유 있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말이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자. 런던의 집값이 중동, 러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부자들이 살지도 않으면서 집을 사는 바람에 천정부지로 올라도 정부가 중과세와 금융 규제 등의 인위적 수단까지 동원해서 떨어뜨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실리콘밸리에 세계의 ICT 기업이 몰려들고, 밴쿠버에서 LA까지 북미주 서해안의 대도시 주택은 중국인들이 현찰을 들고 와서 사 대는 바람에 가격이 너무 올라서 주거비 부담이 과중해지고 있지만 규제를 하지는 않는다.

경제가 잘되어 내외국인의 투자가 줄을 서야 우리 땅과 건물의 값이 올라간다. 또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올라가서 국민이 더 나은 위치의 더 큰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집값이 올라간다. 부동산 가격은 주가와 함께 경제 운용의 최종 성적표다. 국민은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취임 시보다 더 높아져 있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A30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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