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후루룩이 아니라 푸다닥… 우동 면발이 신나게 막춤을 춘다

정동현
입력 2019.03.01 14:18

[정동현의 pick] 우동 편

서울 논현동 '현우동'

차갑게 식은 굵은 면발이 후루룩거리지 않고 푸다닥거렸다. 잡으려고 하면 날갯짓을 하며 난리를 치는 암탉처럼 면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를 극렬히 저항했다. 이 면발을 젓가락으로 콱 잡고 힘을 내 흡입하며 이로 으깼다. 어릴 적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던 가락국수와는 아예 종이 달랐다. 굵기만 할 뿐 입에 넣으면 나긋나긋 얌전히 풀이 죽던 가락국수와 달리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우동은 꼿꼿이 고개를 세운 채 기가 죽지 않았다. 같이 우동을 먹던 동료가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이거 덜 익은 거 아니야?"

서울 논현동의 ‘현우동’은 떠오르는 우동 명가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나는 '아닐걸요'라고 알은 척을 하며 남은 우동을 먹었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쯤에는 식사가 마치 '승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인의 면 사랑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한국인은 면보다는 면을 둘러싼 다른 요소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짬뽕을 평할 때 얼큰한 국물 맛과 풍성한 건더기 운운하는 것이 보통이지 면의 익힘, 굵기, 종류를 따지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면 자체에 집중하는 듯하다. 소바(메밀국수)가 그렇고 또 우동이 그렇다. 면을 고명 없이 맛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모습을 보면 사시미 먹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 하늘 아래 그 파닥거리는 면발이 문득 당기는 날이 있다.

서울 합정 절두산 순교성지 근처 '교다이야'는 경기도 분당의 '야마다야'와 함께 일식 우동으로 이름을 날리는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다. 목동에서 영등포를 거쳐 2015년 합정에 자리 잡은 이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훤히 보이는 주방이 눈에 띈다. 그 안에는 흰 옷을 입은 남자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탄성이 떨어진다 하여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반죽을 꺼낸다. 나무 막대에 체중을 싣고 상앗빛 밀가루 반죽을 밀고 또 민다. 산 아래로 마냥 굴러 떨어지는 돌을 묵묵히 정상으로 밀어올리던 신화 속 시시포스 같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깨끗이 세수라도 한 듯 반짝이는 우동 한 그릇이 도착한다. 차갑게 식힌 자루우동은 이 집의 대표 메뉴. 홀로, 그리고 오래 수행한 무사처럼 잡념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길게 이어지는 면을 쓰유(간장다시국물)에 찍어 한 가닥 한 가닥 먹을 때마다 그 나무 밀대에 얹혀진 무게감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교다이야'가 이미 한 분파를 이뤘다면 강남 논현동의 '현우동'은 이제 그 역사를 쌓아가는 집이다.

빈틈없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똬리를 튼 우동 면발에 바삭한 튀김을 올리고 그 위에 달달하고 짭짤한 쓰유를 부어 먹는 ‘덴뿌라붓카케우동’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논현동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뒷골목에 문을 연 이 집 역시 형형하게 빛나는 말끔한 주방과 제면실을 갖췄다. 수줍게 웃지만 눈동자 깊숙이 칼 한 자루 심은 요리사는 분과 초를 맞춰 면을 삶은 뒤 만지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뱀 같은 똬리를 틀어 그릇에 담는다. 가츠오부시 육수에 면을 담은 '카케우동'은 해장 겸 식사를 청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재료와 기술이 화장기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음식이다. 면에 쓰유를 부어 먹는 '덴뿌라붓카게우동'은 이 집의 면 뽑는 실력뿐만 아니라 튀김까지 맛볼 수 있는 메뉴다. 베일 듯 예리한 사각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면을 입에 넣으면 단단한 면발이 신나게 막춤을 춘다. 턱에 힘을 주어 면을 삼키면 끊어지지 않은 면발을 따라 위장길이 훤히 드러나는 듯하다. 튀김을 씹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하다. 정확히 통제된 반죽과 튀김 시간 덕분이다. 이 집 주인장의 추천 메뉴는 '멘다이코앙카케다마고토지우동'이다. 이름은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명란 달걀 우동' 정도 된다. 뜨끈한 국물에 풀린 달걀은 드레스 자락처럼 층층이 고운 물결을 이루며 혀를 간지럽힌다. 명란은 국물에 간을 더하며 희미한 유자 향기를 남긴다. 온도 탓에 면에는 힘이 조금 풀리지만 그래도 그 기세는 여전하다. 그릇을 짚고 일어서서 목구멍을 향해 돌진하는 기세다. 면발 하나에 인생을 거는 사내의 하얀 회초리다.
조선일보 B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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