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核부터 막힌 실무협상… CVID는 기대도 못할 상황

하노이=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이용수 기자
입력 2019.02.27 03:01

[하노이 美·北 정상회담] 협상 쟁점 / 비핵화
北, 제재 완화 거듭 주장하면서 영변 우라늄 시설은 제외 가능성

이번 미·북 비핵화 협상의 핵심 키워드는 영변을 포함한 북한 핵 관련 시설을 어디까지 폐기하느냐다. 영변 핵시설은 한때 북한 핵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제재 완화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영변 외의 핵 시설 추가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해야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확실한 제재 완화가 우선"이라며 영변 사찰·폐기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그동안 영변의 5㎿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가동해 핵물질인 플루토늄을 50㎏가량 생산했다. 또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또 다른 핵물질인 고농축 우라늄도 대량 생산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플루토늄보다 우라늄 농축을 통해 얻은 핵물질 양이 2배 이상 많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제재 완화를 해주지 않으면 영변 우라늄 시설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크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변의 플루토늄 시설만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과분한 보상을 받아내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영변 이외의 다른 핵 시설과 핵 물질, 핵무기는 이번 협상 대상에 대부분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 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은 "북핵의 일부인 영변만이 핵심 쟁점이 됐다는 것 자체가 북한의 의도대로 굴러간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美, 北에 '영변+α' 요구했지만

지난달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영변을 넘어서는 것'(beyond Yongbyon)을 언급하며 "북한 전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의미한다"고 했다. 작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스스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및 파기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하노이 선언'(가칭) 또는 공동성명에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풍계리 핵실험장과 함께 영변 핵단지 등을 명기하고 북한이 관련 시설들의 신고·사찰·검증 계획(로드맵)을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제재 완화가 우선"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 완화를 해줘야 영변 폐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미국의 입장도 다소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다. 비건 대표는 "미국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북한의 포괄적인 핵 신고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선(先) 핵 신고' 없이 일단 초보적 비핵화 조치라도 진행시켜 놓고 보자는 방향으로 물러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현실적으로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폐기를 이룰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영변엔 지금도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이 가동 중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플루토늄 시설은 워낙 낡은 데다 핵안전 문제도 심각해 쓸 만한 것은 원심분리기뿐"이라며 "우라늄 시설이 빠지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영변 카드' 부풀리는 北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갑자기 도발을 멈추고 평화 공세로 돌아서면서 지난 26년간 활용했던 영변 카드를 다시 흔드는 것에 주목한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영변 카드의 가치를 부풀리면서 비핵화 논의가 영변 폐기에 집중되고 있다"며 "영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폐기만 합의해도 대단한 성과로 둔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도 이날 "이미 폐쇄 처분했어야 할 오래된 시설(영변)을 (미국에) 넘기고 제재 문제를 해결해 가자는 게 북한의 생각"이라고 했다.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또한 북으로선 이미 필요성이 떨어져서 '버리는 카드'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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