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하는 왕관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입력 2019.02.26 03:00

[진실의 방]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성대한 축제의 날, 사자 레오가 온 나라 동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관'을 씁니다. 레오의 갈색 갈기 위에서 황금빛 왕관이 보기 좋게 번쩍입니다. 그런데 왕이 된 뒤 레오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왕좌에 앉아 기분 내키는 대로 법을 바꾸며 모든 걸 통제하려 들죠. 동물들은 '레오 폐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레오의 폭정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지죠. 동물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가지만 감히 누구도 거역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악독하다면서 왜 왕으로 인정해?" 호기심 많고 겁이 없는 아기새 가 동물들에게 물어봅니다. "그야 왕관을 썼으니까." 이 말을 들은 아기새는 폴짝 날아올라 레오의 머리에 있던 왕관을 낚아챕니다. 빼앗은 왕관을 돼지의 머리에 씌워주죠. 그러자 이번에는 돼지가 레오처럼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립니다. 악어, 당나귀, 코끼리, 여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왕관을 쓰는 순간 모두 제멋대로가 됩니다. 아기새는 뭔가 결심한 듯 왕관을 낚아채 먼 수평선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러고는 넓고 깊은 바닷속에 던져버리죠.

'명령하는 왕관'이라는 동화책의 줄거리입니다. 어린이책이지만 어른들이 보면 더 뜨끔할 만한 이야기죠. 조그만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권리와 의무처럼 '갑질'을 해대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들이 떠오릅니다. 여러 가지 갑질 중에서도 최근에는 '직장 내 갑질' 문제가 화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일명 '양진호 방지법'도 오는 7월 시행되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 술이나 회식을 강요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없이 업무를 바꾸거나 일을 주지 않는 행위 등이 모두 처벌 대상입니다.

이달 더나은미래의 '공익 추적'에서는 비영리 조직의 직장 내 갑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습니다. 몇 년 전부터 비영리 조직의 거버넌스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고, 비영리 내부에서도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이라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제보 내용은 기사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비상식적인 게 많았습니다. 특히 국제기구의 인권 유린이 심각했습니다. 한 유엔기구의 한국 사무소에서는 '본부 관리자의 자녀가 한국에 놀러 왔다가 다쳤다'며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병시중을 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들은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현직 제보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여기까지. 아기새가 왕관을 낚아채 바다로 던져버리기 전에 반성하고 시정하기 바랍니다.

조선일보 D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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