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김 "北, 핵보유국 인정과 영구적 평화체제 원해"

팰로앨토(미국)=강인선 특파원
입력 2019.02.25 03:00

작년 4번 방북한 김 前센터장
"비핵화 로드맵 입구는 핵실험 중단, 출구는 北이 NPT 재가입하는 것"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나에겐 아이들도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지고 사는 건 원치 않는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4월 비핵화 진정성을 묻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고 앤드루 김〈사진〉 전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22일 밝혔다. 지난해 3월 한국 대북 특사단이 방북 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와 정상회담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후 미국 측이 직접 김정은을 만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스탠퍼드대학 월터 쇼렌틴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소장 신기욱)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김 전 센터장은 이날 CIA 은퇴 후 첫 공개 강연을 했다. 그는 1차 미·북 정상회담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해 4차 방북까지 대부분 동행해 북한 김정은을 가장 많이 만나본 미국 인사로 꼽힌다. 강연에서 그는 군사 옵션을 거론하다가 정상회담 국면으로 극적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물밑 작업 경험, 당시 논의됐던 미·북 핵 협상의 얼개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였다. 하지만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에 나온 그의 발언은 여전히 북한을 향한 미국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직접 만나본 김정은이 "매력적(charming)이었다"고 했다.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역시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고 했다. 희망을 갖게 된 북한 주민들의 기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北 경호원들 고려항공 타고 먼저 도착 - 24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 외곽의 노이바이 공항에 북한 고려항공 소속 수송기가 착륙했다. 수송기에서 북한 김정은 경호원들이 나와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김 전 센터장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군사·경제 병진 노선"이라며 "핵 보유를 통해 군사 발전은 어느 정도 이뤘으니 앞으로 경제 제재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여전히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가 명확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북한이 협상 단계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센터장은 "우선순위가 다를 수는 있지만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한) 모든 유엔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종전 선언을 하며, 결국 김씨 왕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영구적인 평화 체제를 확보하길 원한다"고 했다.

김 전 센터장은 미국의 목표에 대해서는 "어렵더라도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밝힌 미국의 요구 사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지하고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WMD(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모든 시설을 신고·폐쇄하며 ▲미국·국제 전문가들의 접근을 허용하고 ▲이 시설들의 폐기 시간표를 마련하며 ▲궁극적으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재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변 핵 시설 폐기와 관련해선 "미국 정부는 영변 핵 연구 시설들이 폐기되면 그들(북한)의 핵무기 생산 능력을 상당히 감소시킬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이는 의미 있는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제재 해제에 대해선 "FFVD가 가시권에 노출됐을 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상을 제대로 한다면 이 모든 것이 달성 가능하다고 정말 믿는다"며 "그 과정은 한 발짝 뒤로 갔다 두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센터장은 북한이 과거 미국의 정권 교체로 협상이 깨졌던 경험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부 장관의 방북을 거론한 뒤 "만약 (민주당인) 앨 고어 부통령이 대선에서 이겼다면 미·북은 외교관계를 맺게 됐을 것"이라며 "(고어가 지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북 수교는) 없던 일이 됐다"고 했다.

김 전 센터장은 북한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관련, 북한의 미국 전략 자산 반입 중단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고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거론한 적은 없다"면서도 "언젠가는 북한이 그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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