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미자, 한국 여가수의 대명사···어느덧 데뷔 60년

뉴시스
입력 2019.02.21 17:17
박수치며 환하게 웃는 이미자
'질이 낮다', '천박하다', '상급 클래스에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창피하다', '술집에서 젓가락으로 상을 두들기면서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78)가 스스로 털어놓은 자신에 대한 꼬리표다.

이미자는 21일 "항상 그런 소외감으로 힘들었어요. 저도 서구풍의 발라드도 부를 수 있는데 (주로 부르는 노래 장르를) 바꿔볼까 생각도 했죠. 그러나 참아왔어요. 견뎌냈죠. 60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정말 잘 절제하면서 잘 지내왔구나. 잘 지탱했구나'라는 자부심까지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1959년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아씨' 등 히트곡을 포함해 음반 500여장을 통해 2000여곡 이상을 발표했다. 40억원대 소득 신고을 누락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난해 세금 19억원이 부과되면서, 명성에 금이 가기도 했지만 '처음'이란 수식어가 가장 많은 '국민 가수'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1973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을 위한 최초의 위문공연, 2002년 평양에서 한국 가수 최초 단독 공연 등의 기록을 썼다. 무엇보다 민족의 한과 애환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한풀이'로 통했다. 데뷔 이래 흔들림 없는 창법과 가창력으로 '가장 한국적인 음색'을 여전히 들려주고 있다.

이미자의 지역 공연 사회를 보는 MC 이택림은 "이미자님의 노래는 민족 시련, 우리 할머님과 어머님들의 아픔과 한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이미자 역시 "우리가 살기 힘들었던 시기의 역경을 우리 부모님들이 다 애쓰시고 참고 견뎠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사는 나라가 됐어요"라면서 "제가 그 당시 그렇게 바빴던 이유는 어려운 시기의 흐름를 따르는 노랫말과 제 목소리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기 오신 기자님들의 사랑보다도 기자님들의 부모님 사랑이 컸기에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갖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기자님들의 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며 웃었다.

이미자는 단상이 마련됐음에도 기어코 의자에 앉기를 고사했다. "뜻깊은 날에 앉아서 하는 건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문답이 오간 시간과 기념 행사까지 40여분간 꼿꼿이 서 있었다.

이미자는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1곡과 옛 곡 59곡을 리마스터링한 기념앨범 '노래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발표했다. 이미자의 초기 목소리부터 현 목소리까지 전부를 들려주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
이번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는 50주년 앨범 당시 신곡인 '내 삶의 이유 있음을'을 작업한 시인 김소엽씨가 작사, 작곡가 정욱조씨가 작곡했다.

이미자는 "50주년 기념 신곡이 제 마지막 신곡이 될 줄 알았어요. 5년 간격으로 공연을 해 55주년에 공연을 했지만 음반은 안 냈거든요. 60주년 앨범을 내면서 팬들의 사랑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신곡을 포함시켰죠"라고 설명했다.

김 시인에게 60주년을 맞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그녀가 구구절절 잘 표현을 했다며 노랫말을 전했다. "역사의 뒤안길을 함께 걸으며 동백꽃도 피고 지고 울고 웃었네. 내 사랑 내 젊음 다시 만날 수는 없어도 나 그대와 함께 노래하며 여기 있으니 난 행복해요. 감사하여라"다.

이미자는 신곡을 낸 이유에 관해 "현재의 제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20대, 30대, 70대 목소리를 다 넣었죠. 다 들으시면 현저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60년 세월 동안에 이미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앨범은 3CD로 구성됐다. CD1은 이미자 앨범 주제가 또는 기념곡으로 발라드풍 곡들이다. 이미자는 "제가 나름 부른 대곡들"이라고 했다. CD2에는 자신의 인장과도 같은 전통 가요를실었다.

무엇보다 CD3이 중요하다. '황성 옛터' '목포의 눈물' '번지 없는 주막' '눈물 젖은 두만강' 등 자신의 노래는 아니지만 사라져 가기에 아까운 우리 노래를 담았다.

이미자는 "CD3 노래들은 제 노래보다도 신경 써서 부른 노래들이에요. 우리가 시련과 한을 갖고 살았죠. 어려운 시대에 부른 우리 가요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노래"라고 했다. "그 노래로 나라를 잃은 서러움, 배고픔의 서러움을 달래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시대의 곡들 그렇게 고마운 곡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가요의 뿌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죠. 녹음을 해서 영구보존을 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미자는 '가요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노랫말 전달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후배들에게 주문했다. "슬픔을 슬픈 대로 전달하고 기쁨을 기쁜 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죠. 요즘 서구풍의 노래가 많이 몰려와 우리 가요가 파묻히고 가사 전달이 안 됩니다. 노랫말 발음을 정확히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노래를 부르면서 기교도 집어넣고, 박자도 늘렸다가 줄였다 하는 습관이 무대에 생겼었는데 레코드를 취입할 때는 오버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이미자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작곡가가 있다. 백영호(1920~2003)와 박춘석(1930~2010)이다. 두 작곡가는 이미자에게 수백곡을 줬다. 이미자는 두 사람을 가족 이상으로 생각했다. "백 선생님은 아버지처럼 믿음직스러웠어요. 박 선생님은 무대까지 지휘해주시면서 신경 써주셨는데 연출도 맡으셨죠. 오빠 같은 분입니다."

이미자의 전성기는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가 열었다. 백영호가 작곡하고, 한산도가 작사한 이 곡은 35주 동안 KBS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내는 곡마다 히트시킨 이미자는 그러나 "60년 동안 정말 보람된 일도 많이 있었지만 힘들고 어렵고, 견디기 어려운 시기가 더 많이 있지 않았나"라고 돌아봤다.

어려웠던 순간의 대표적인 일화는 이미자의 3대 히트곡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가 왜색 등을 이유로 줄줄이 금지곡이 됐을 때. 이미자는 "35주간 1위를 한 곡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 거예요. 무대는 물론이고 어디서도 부를 수가 없었죠. 목숨을 끊어놓은 경우와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면서도 장하게 잘 지내왔어요."

힘들었던 순간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사랑해주신 팬들이 금지곡임에도 한사코 불러 주셨기 때문이에요. 금지곡이든 아니든, 방송에서 나오든 안 나오든 불러주셨죠. 그 힘이 원동력이었고, 그것으로 버텼어요."

이미자는 팔순에 가까운 고령에도 여전히 전국 투어를 도는 몇 안 되는 현역이다. 이택림은 "지역에서는 하루 2차례 4시간 공연하는데 공연마다 25곡, 앙코르 포함하면 27곡을 부르세요"라고 귀띔했다. 올해도 5월 8~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여는 '이미자 노래 60년'을 비롯, 전국 투어를 예정했다.
공시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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