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3·1운동을 '주류 교체'와 연결하니 꼬이는 거다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9.02.20 03:15

정부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동사업 등 곳곳에서 표류
남북한 간 역사 인식 판이한데 정략적으로 묶으려다 차질

이선민 선임기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학계·종교계·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기념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언론도 관련 기획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국민적 관심을 고조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유독 정부가 추진하는 기념사업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초 고위 공직자와 민간 인사로 대규모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념사업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추진위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남북 공동 기념사업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맥이 빠진 상태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공동 기념행사, 공동 학술회의 및 전시회, 공동 기념 음악회, 남북 대학생 평화 대장정 등을 제안했지만 3·1절이 열흘도 안 남은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추진위가 지난해 말부터 개최하는 학술회의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례적인 일회성 기념행사를 제외하면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3·1운동을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과 연결하는 기념곡 발표 등 본질과는 관련 없는 사업만 남았다.

정부의 3·1운동 100주년 사업이 표류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추진위는 기념사업의 목표로 '9월 평양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과 '촛불 시민혁명으로 표출된 민의(民意)의 제도화'를 제시했다. 지난해 가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기로 한 합의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 혁명'을 3·1운동 계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는 한완상 추진위원장의 입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표현됐다. 그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 공동 기념사업을 통해 분단 73년간 '상호 악마화 과정'을 끝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 "(3·1운동 100주년 사업이) 친일(親日)과 반공(反共)의 '앙시앵 레짐'을 퇴출시키는 시작이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직후부터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3·1운동을 '실패한 부르주아 민족운동'으로 규정했고, 민족 대표들의 '기만성'과 '투항주의'를 비판했다. 임정(臨政)에 대해서는 "'장개석의 주구(走狗)'였다가 '미제(美帝)의 주구'로 변했다"고 악평했다. 더구나 1980년대 들어 이른바 '주체사관(主體史觀)'이 대두한 뒤로는 3·1운동을 김일성 가계(家系)와 평양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3·1운동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주도한 평양의 만세 시위로 시작됐으며 거기에 여덟 살 먹은 김일성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남북한 역사 인식의 간극을 생각하면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빼고 3·1운동만 공동 기념하자고 매달리듯 북쪽에 제안한다고 해서 성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이 남한의 정치 구조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완상 추진위원장은 취임 직후 "분단 고착과 남북 갈등으로 정치적 이득을 봐왔던 대한민국 주류 세력의 구조를 3·1운동 정신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3·1운동을 '반공 퇴출' '주류 교체'와 연결하는 기발한 발상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걸맞은 기념사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질은 추진위원회가 구성될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고 북한 정권에는 호의적인 인사가 위원장을 맡고, 위원들 중에도 3·1운동의 역사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제대로 기리고 싶다면 '민족 통합'이라는 3·1 정신에 어울리게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권하고 싶다.


조선일보 A29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