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입력 2019.02.12 03:17

박 前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엔 오직 '박근혜' 개인만 존재
국민·보수층 걱정 대신 책상 없다고 불평 불만
한국당, 전당대회로 모두 털고 새 체제로 문 정권과 맞서야

김대중 고문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옥중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던진 당대표 출마자들의 흠집 내기 발언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아직도 한국당의 물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아직도 당 대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더 나아가 앞으로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유 변호사가 전한 메시지에는 '박근혜' 개인만이 존재한다. 온통 당신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뿐이다. 국민에 대한 생각, 보수층에 대한 심려, 한국당의 진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재직 시에도 청와대에서 독존하더니 옥중에서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정확히 계산된 것인지, 전달자의 개인적(?) 감정이 섞여 있는지는 몰라도 박 전 대통령이 황교안, 홍준표, 오세훈씨 등에 대해 쏟아낸 불만은 치졸하기까지 하다. 감방 내의 책상 의자, 수인(囚人) 번호 등을 둘러싼 힐난 등은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 맞는가 싶기까지 했다. 수감된 지 678일 만에 최초로 하는 발언이 한낱 불만과 불평에 그치고 있다. 그의 메시지에는 '문재인 세상'에 대한 걱정과 경고도 없다. 대리인을 통한 전언(傳言)에 그런 문제를 담을 계제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신문과 TV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에 수백에서 일천 통의 지지자 편지만 본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문재인 치하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이 어떤 고충을 견디고 있고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지 상세히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신 그의 처지를 위로하고 세상에 통분하는 '친박' 내용만 읽었을 것이다.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통 '배신 덩어리'일 것이다. 전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최근 북핵이나 경제 문제에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지만 그 한마디가 전부다.

탄핵 이후, 문 정권 2년 동안 사람들, 특히 보수층은 이 나라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우리의 미래는 과연 있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와 불안에 시달려 오면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져왔다.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건 어떤 정치적 곡절에 의해서건 우리가 뽑은 보수 대통령이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가슴 아파했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안목이 어느 선에 머물러 있는지를 미루어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정(情)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때마침 박 치하에서 안보 참모 역할을 했던 김관진씨는 법정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판단한다면 지휘자인 내게 책임이 있으니 부하들 대신 나를 처벌해달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는 많은 국민도 그가 '죽어서 사는 길'을 택할 것을 바라왔다. 그 길은 한국당이 집권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다. 그의 재판은 역사에 '정치 재판'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는 신체의 구속보다 명예의 구원이 더 의미가 있는데도 그는 그것을 모르는 것 같다.

정치란 괴물은 그의 인신 구속 해제를 야당 분열의 촉매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아도 '친박 신당'설이 심심치 않게 나도는 것을 보면 현재의 권력은 그들의 입맛에 따라 박근혜씨의 석방 또는 사면으로 야당을 또다시 분열의 와중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대응이다. 결론적으로 한국당이 다시 '박근혜'로 인해 과거에 휘말리는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된다. 지금 문 정권이 끌고 가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실감하는 이상, '박근혜'와 탄핵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도리(道理)'와 '배신'을 논하고 있을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전당대회 연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불능 정당이어서는 곤란하다.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체제로 문 정권과 맞서나가는 것이 한국당의 지상 과제다. 박근혜의 '옥중 개입'이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른다. 덮기보다 털고 가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여러 후보가 나오고 거기에 '박근혜'까지 가세해 한바탕 치고받고 싸우되 이 전당대회로 모든 당내 파벌 싸움을 단락 짓고 2020 총선거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또다시 친박·비박이 나오고 공천 싸움을 벌이면 한국당은 그것으로 끝이고 자유민주체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보수 세력의 '자해 행위'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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