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권력의 스피커' 라디오

입력 2019.02.12 03:16
캐나다 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귀에만 의존하는 라디오는 청취자 참여도가 낮아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매체'라고 했다. 이 주장은 1938년 10월 미국에서 벌어진 '화성인 지구 침공' 사건에 극명하게 반영돼 있다. 영화감독 오슨 웰스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을 듣고 이를 실제로 믿은 청취자들이 총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피란을 떠날 정도였다.

▶19세기 말 육지와 어선 간 무선 연락을 위해 발명된 라디오는 1920년대 들어 상업화됐으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본격 대중매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정치인들이 라디오를 애용했다. 히틀러는 전 국민에게 라디오를 보급해 자신의 연설을 듣게 했는데, "독일인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나치가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하자 패닉에 빠진 스탈린이 생각해 낸 것도 라디오였다. 스탈린은 "절대로 모스크바를 떠나지 않겠다"고 연설했고, 소련군의 와해를 막는 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라디오의 '권력 우호적 성향'이 심각해졌다고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밝혔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시사 프로그램이 심했다. 한 프로의 경우 정부에 불리한 문제를 변호하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설까지 사용했다. 지상파 방송의 라디오 프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스피커'를 자처하며 정부를 대변하는 방송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지상파 라디오는 초등학생을 전화 연결해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 중 누가 더 나쁘냐"고 묻기도 했다. 출퇴근길 라디오가 권력에 충성 경쟁하는 놀이터가 된 것 같다.

▶재작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라디오를 어떤 기기로 듣느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오디오'가 81%로 압도적 1위였다. 일반 오디오는 21.8%였는데, 매년 줄어들고 있다. 라디오를 듣는 장소 역시 자가용이 76.9%로 가장 높았고 집이나 사무실, 대중교통은 미미했다.

▶라디오 시사 프로도 언론인데,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을 비판하지 않고 그 나팔수로 나선다. 도리어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한다. 권력의 나팔수만이 아니라 방패까지 자처한다. MBC PD를 지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매일 같은 시간대에 듣는 라디오는 가랑비에 옷 젖듯 사고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나치의 선전책임자 괴벨스는 "대중은 처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고 했다. 우리 라디오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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