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기소... 범죄혐의 47개

오경묵 기자
입력 2019.02.11 14:00 수정 2019.02.11 16:32
검찰, 양 전 대법원장 구속기소…고영한·박병대도 기소
梁, 강제징용 사건서 주심 대법관에게 ‘기각 의견’ 전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꼽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재판에 넘겨졌다. 헌정 사상 전·현직을 막론하고 사법부 수장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며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이었던 이탄희 판사의 부당한 인사조치가 알려진 뒤 1년 11개월,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혐의의 핵심은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이다. 검찰이 그의 공소장에 적시한 범죄 사실은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 4개 항목에 걸쳐 총 47개에 달한다. 지난해 6월 수사에 착수한 이후 8개월여에 걸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결과다.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세 차례에 걸쳐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 21개, 다스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 16개보다 2~3배 많다.

검찰은 상고법원을 세우기 위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법부 이익을 위해 청와대의 지원과 협조를 받아내려고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사건에서 주심 대법관에게 선행 판결의 외교적·국제법적 문제를 거론하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청와대·외교부 등의 의견을 반영해 심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재판 계획과 심증을 피고 측 변호사와 외교부에 제공한 혐의도 있다. 재판을 놓고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설득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검토시킨 혐의도 다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헌재 파견 법관에게 헌재에서 심리 중인 민감한 사건에 대한 재판관 평의와 동향을 보고해 전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헌재 소장을 비난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대필 기사’를 작성하도록 한 뒤 법조 전문지 기자 명의로 게재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있다. 일선 법원에서 헌재가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을 결정하자 이를 취소하고 은폐할 목적으로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받는다.

그래픽=이민경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른바 ‘튀는’ 법관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 수뇌부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을 비판하거나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행동을 한 법관에 대해 2012~2017년 정기인사에서 인사 원칙에 반하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비판적 세미나를 연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이 연구회 소속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활동을 저지하고 와해시킬 목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수사됐다.

법관 비위가 불거지자 사법부의 ‘위신’이 떨어져 사법정책 추진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 은폐하고 축소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부산고법 판사 향응 사건을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덮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서도 판사 비위를 은폐하기 위해 영장전담 판사들을 통해 수사 기밀을 수집하고, 검찰총장 압박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예산을 불법으로 편성, 집행한 혐의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014년 8월부터 2015년 12월 사이 각급 법원에 공보관실을 운영할 것처럼 예산을 허위로 신청해 3억 5000만원을 배정받았다. 이 돈은 전액 현금으로 인출된 뒤 일선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에게 양 전 대법원장 명의의 격려금으로 지급됐다. 이 과정에서 지급결의서·수령확인증을 허위로 작성하라고 지시한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일부 혐의에 개입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추가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과 상식에 부합하는 선고가 나올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대법원에 비위사실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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