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돼지해인데… 中 CCTV가 돼지를 금기한 이유는?

이벌찬 기자
입력 2019.02.11 03:00

무슬림 탄압 비판 의식한 듯

중국 CCTV가 돼지해를 맞아 방영한 설 특집 TV쇼 '춘제완후이(春節晩會·약칭 춘완)'에서 뜻밖에도 '돼지'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방송 시간 4시간 40분 동안 사회자들은 '돼지'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춘완이 매년 그해의 십이지 동물 형상을 로고로 사용해 공연 요소로 활용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인터넷에서는 '춘완에서 사라진 돼지(春晩沒有豬)' '돼지해에 돼지 실종(豬年沒豬)'이란 검색 문구가 급증했다. 춘완은 1983년부터 매년 국가 주도로 제작하고 있다. 올해는 14억 인구 중 11억70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돼지해 춘완에서 돼지가 종적을 감춘 이유는 중국 당국이 자국 내 2000만 무슬림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돼지를 상서로운 동물로 보지만 무슬림들은 혐오스러운 동물로 여긴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돼지'란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중국 간쑤·산시성 이슬람교도 밀집 지역에선 돼지고기(猪肉)를 '다로우'(大肉·큰 고기)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를 정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9일 '중국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숭배하는 올해가 특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이슬람교인 위구르족 탄압으로 쏟아지는 국내외 비난을 의식해 이슬람교를 존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유엔은 중국이 2017년부터 위구르족 100만명을 재판 절차 없이 집단수용소에 가두고 있다고 폭로했다. 중국은 "합법적 직업 재교육 시설"이라 주장했지만, 뉴욕타임스 등의 탐사 보도를 통해 강제 구금 정황이 드러났다.

춘완에서 돼지가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5년 돼지해에는 돼지 머리 모양의 장식이 무대 상부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방송 직전 당국이 대형 '춘(春)'자로 바꿨다. 2007년에는 돼지가 나오는 광고를 CCTV에서 아예 방영 금지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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