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前 프랑스어로 쓴 소설, 韓 독립운동 알렸다

김성현 기자
입력 2019.02.11 03:00

[3·1운동 100년 / 임시정부 100년] 在佛 독립운동가 서영해
역사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 유럽 전역에 3·1운동 알리고 독립의 정당성 내세워
90년 만에 국내 첫 번역 출간

1925~1926년 무렵 서영해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부산박물관
"제국주의 열강은 약소 민족과 국가의 불행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분노와 절망을 넘어 그럴수록 더 한마음 한뜻으로 결속하면서 독립운동의 깃발을 힘차게 날렸다."

1929년 프랑스어로 쓴 역사소설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임시정부 수립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유럽에 알렸던 재불(在佛)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의 작품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작은 사진)'이 90년 만에 번역 출간된다. 출판사 역사공간은 11일 책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한국의 주요 독립운동을 기술하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프랑스어판 전문을 실은 이 책은 1929년 프랑스에서 출간 직후 1년간 5판을 찍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스페인 언론에도 소개되면서 유럽 전역에 한국 역사·문화와 독립운동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소설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은 가상 인물인 주인공 박선초의 활동을 통해 한국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1부는 구한말 박선초의 반일(反日) 의거, 2부에서는 관혼상제와 상투, 족보 등 한국 전통 문화를 다룬 뒤, 마지막 3부에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임시정부 수립, 파리강화회의 대표단 파견 등 주요 사건을 소개했다. 불어판 출간 당시 책의 제목은 불어로 썼지만 부제는 '한국역사소설(韓國歷史小說)'이라고 한글과 한자를 병기했다.

김옥균 등 개화파가 1884년 갑신정변이 아니라 1905년 을사늑약 당시에 활동했다거나, 개화파가 동학 주도 세력과 연계하려고 했다는 소설적 허구도 가미했다. 이 소설을 옮긴 재불 번역가 김성혜씨는 "100년 전의 문장이 아니라 현대 프랑스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사하는 어휘가 품격 있다"면서 "특히 한국 시골 풍경을 묘사한 장면들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우아한 정취가 묻어났다"고 말했다.

서영해는 열일곱 살 때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20년 프랑스로 건너가 임시정부 파리 통신원과 주불 대표위원 등 유럽 외교 활동을 담당했다. 1933년 이승만 당시 임정 전권대사가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연맹 본부에 대한독립청원서를 제출할 때 서영해는 숙식을 함께하면서 활동했다. 이 때문에 "미주위원부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국사편찬위원회)는 평가를 받았다.

1929년 불어판 출간 직후 서영해는 국제연맹 사무총장, 프랑스·체코 대통령, 파리 주재 중국 총영사 등 유럽 각계 지도층 인사를 만날 때마다 이 책을 증정했다. 소설의 해설을 맡은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서영해 선생은 고유한 문명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및 홍보 책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서영해는 1945년 5월 김구 임정 주석이 드골 프랑스 임시정부 주석에게 독일 항복 축하 전문을 보내고 드골의 답신을 받을 때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1947년 귀국했지만 1948년 이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학교 교사를 하다가 1956년 이후 종적이 끊겼다. 월북설과 실종설 등 학계에서는 다양한 추정이 나온다.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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