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광복 전쟁'이다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입력 2019.02.11 03:08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 역사 전시회에서 윤봉길(1908~ 1932) 의사를 '실패한 자객'으로 잘못 소개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항의하자 주최 측이 '성공한 의사(義士)'로 수정한 일이 있었다. 중국 측 잘못도 있지만 우리가 윤 의사의 의거를 제대로 평가하고 독립운동사에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해 생긴 측면도 있다. 윤 의사의 의거는 침략 전쟁에 맞서 일본군 수뇌부를 겨냥한 '전투 행위'이자 '광복 전쟁'이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일왕 생일) 및 전승 기념식장'에서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 수뇌부를 물통형 폭탄으로 기습 공격해 섬멸했다. 이 거사는 윤 의사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한 특공대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임시정부 국무회의의 승인을 받고 수행한 특공 작전이자 의거(義擧)다.

일본군도 이를 군사 활동으로 규정했다. 일본 육군이 1932년 9월 작성한 '상해 천장절 식중 폭탄흉변 사건'이란 문서를 보면, 윤 의사의 거사를 '조선 독립을 위한 편의대원(민간 복장의 특수부대원)의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시라카와 대장의 사망을 공무 수행 중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전투 중 전사(戰死)한 것으로 기록했다. 상하이 천장절 식장은 '상해전장(上海戰場)'으로 표기했다.

윤 의사의 의거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임시정부가 부활하는 불씨가 되었다. 당시 국민당 정부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중국 백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사실상 정부로 인정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인애국단 활동을 기록한 '도왜실기(屠倭實記)' 국역판(1946) 서문에서 '한국 해방의 단서가 된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 총통이 솔선해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창해 연합국의 동의를 얻은 것은 그 원인이 윤 의사의 장거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윤 의사의 거사는 의열 투쟁이라는 모호한 표현 대신 임시정부 승인하에 침략국과 싸운 무력 투쟁이자 광복 전쟁으로 기록해야 한다.


조선일보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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