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MB, 이건희 赦免 대가로 삼성 뇌물 안 받아… 내 요청에 국익 위해 결단"

입력 2019.02.11 03:12

이명박·박근혜 前 대통령과의 秘史 공개… 김진선 前 평창올림픽 유치·조직위원장

"평창올림픽을 유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회식에 초청받았으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날 개최 선언을 했어야 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 상태였다. 탄핵 안 됐으면 폐회식 날짜가 박 대통령 임기 끝나는 날이었다. 선출된 차기 대통령이 폐회 선언을 하는 걸로 맞춰져 있었다. 나로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1년을 맞았지만 세간에선 관심이 없다. 평창올림픽 유치·조직위원장을 지낸 김진선(73) 전 강원지사가 출간한 '평창실록'도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명박·박근혜와 관련한 미공개 비사(秘史)가 실려 있다.

김진선씨는“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그만두는 상황까지 왜 전개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김 전 지사는 평창 오대산 아래 컨테이너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상경한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이건희 회장의 사면(赦免) 대가로 삼성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소에는 삼성 뇌물 수수 혐의가 결정타였다. 검찰이 공개한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의 자수서(自首書)에는 '이건희 회장 사면(赦免)을 기대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다스 소송비용을 대납했다'고 나온다. 이건희 사면을 해주는 대가로 삼성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 책에서는 '이건희 사면 복권은 내가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제일 먼저 꺼냈고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이라고 했는데?

"이 대통령이 삼성과 거래해 이건희 회장을 사면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 회장을 사면하면 '대기업 봐주기' 여론으로 정치적 부담이 있었지만 국익 차원에서 마지못해 수용했다. 나는 이 대통령의 용단이었다고 평가한다."

―당신이 제일 먼저 이건희 사면 복권을 꺼낸 이유가 무엇이었나?

"올림픽 유치에서 IOC 위원의 역할과 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규정에 따라 공식 후보 도시는 IOC 위원들을 접촉할 수 없지만 각국의 IOC 위원은 다른 나라 IOC 위원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그룹 경영과 관련해 사법 처리가 확정되면서 IOC 위원 자격도 정지됐다. 3차(次) 유치 도전 당시 우리 IOC 위원은 문대성 선수위원 한 명뿐이어서 큰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처음 건의한 게 언제였나?

"이 회장의 사법 처리가 확정되고 한 달 뒤인 2009년 9월 11일 이 대통령이 강원도를 방문했을 때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이건희 문제로 평창올림픽 유치 활동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반응만 보였다."

―그건 어떤 뜻인가?

"의례적인 반응이었다고 본다. 며칠 뒤 청와대 체육 담당 비서관에게 '이건희의 활동 제약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사가 달린 문제이니 특별 사면 복권을 생각해달라'고 하니 '대통령이 먼저 나설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대기업 봐주기로 여론에 두들겨맞을 게 뻔한데, 대통령이 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 11월 17일 당신은 강원도청에서 '이건희 회장의 IOC 위원 복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평창올림픽 유치를 하는 것이 내 소임이었다. 기자회견 뒤 이 대통령에게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특별 사면 복권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법무장관도 방문해 탄원서를 직접 전달했지만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많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쨌든 이게 도화선이 됐다. 각계의 탄원이 이어졌다."

―정부 입장이 사면 검토로 바뀌었나?

"그때는 전혀 없었다. 사흘 뒤인 11월 20일 평창 준비 상황을 보기 위해 방문한 이 대통령에게 또다시 '이 회장 사면을 적극 검토해달라. 사면에 대한 국민의 공감도가 높다'고 요청했다. 개최 도시 결정 여섯 달을 앞둔 12월 29일에야 이 회장만 원포인트 사면을 해줬다. 국익을 고려한 이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당신은 이 전 대통령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훨씬 더 관계가 깊은 걸로 알고 있다.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1998년 강원도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 내 부탁으로 선거 지원 연설 영상을 보내줬다. 유세차마다 박근혜 영상을 틀었던 게 선거에 많은 도움이 됐다. 동계올림픽 첫 유치 도전을 했을 때 전북 무주와 국내 경합을 벌여야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고 지역 간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다. 박근혜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니 '동계스포츠의 본고장인 강원도에서 당연히 해야 하지 않나'라며 소신껏 얘기해줬다. 평창 유치 과정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다."

―2011년 후반 천막 당사 시절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총선에 출마하라'고 두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는데?

"그가 전화로 15분쯤 설득했다. 내가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잘하고 싶다'는 식으로 고사했지만 솔직히 미안했다. 그러자 얼마 뒤 청와대에서도 제안이 왔다. '조직위원장을 유지한 채 출마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었다. 내가 '겸직하면 정치와 올림픽 둘 다 전념하기 어렵다'며 고사했다. 이듬해 봄 새누리당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을 제안할 때는 안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말은 안 듣고 당(박근혜)의 말을 따른다'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국무총리 지명 카드가 무산되자 당신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던 것으로 책에 나오는데?

"2013년 1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방한했을 때 통의동 집무실에 있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소개했다. 공식 자리가 끝난 뒤 박 당선인과 독대했다. 내게 총리직을 제안해 순간 몹시 당황했다. 나는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첫 총리는 호남 출신 적임자를 찾아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지명을 단행하면 좋겠다. 1차 지명(김용준)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는데 이어 취임준비위원장인 나를 선택하면 또 비판과 공격을 받는다'고 고사했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올림픽 유치가 확정됐을 때. 이건희 회장 모습이 보인다.
―그러자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는데, 당신을 얼마나 잘 봤으면?

"그쪽 캠프 사람처럼 개인적 인연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비서실장 제안에도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데 저와 같은 시니어 멤버들이 주변에 있으면 신선함이 떨어진다.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사람을 쓰는 게 좋다. 평창올림픽도 대통령의 임기 끝을 장식할 중요한 과업이다'라고 말했다."

―그 뒤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는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 첫 비서실장은 허태열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발탁됐다. 어떤 고매한 인격자라도 권력의 자리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은데, 돌아보면 그때 받아들일걸 하는 아쉬움이 없나?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좋은 기회였지만, 박 당선인과 새 정부를 위한 내 판단이었다. 독대하기 한 달 전 박 당선인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주변 인사들을 다 빼고 백지상태에서 조각(組閣)해 신선하게 출발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 적 있었다. 그는 '그렇게 쉽게 되겠느냐' 하는 반응을 보였다."

―2013년 7월 '평창올림픽 유치 2주년'에 맞춰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 대통령 면담 요청을 했으나 한 달 되도록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른 일로 전화를 걸어온 정호성 부속비서관에게 면담 건을 얘기하니 "바로 시간을 잡아주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을 만나니 '대면 보고 요청하신 걸 그간 몰랐다'고 하더라."

―그날 대통령 대면 보고에서 특기할 내용이 있었나?

"박 대통령에게 '북측도 빠른 남북 교류를 희망하는 것 같다.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 교류는 남북 정세와 별개 문제로 진행할 명분이 충분한 어젠다이므로 허락해주시면 통일부 장관과 협의, 진행해보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는 듣기만 했다. 오후에 전화를 걸어와 '남북 협력 문제는 현재의 남북 관계 추이를 봐야 하니 일단 진행을 유보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남북한 올림픽 교류 협력 문제는 중단됐다."

―어떤 정보에 근거해 '북측도 빠른 남북 교류를 희망하는 것 같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나?

"두 달 전 러시아에서 만난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올림픽과 관련, 남북 대화와 협력 방안 모색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북한은 그 무렵 3차 핵실험을 했고, 2012년에는 두 차례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나 경기별 분산개최를 제기했는데?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장을 던졌을 때부터 내가 그 구상을 갖고 있었다. 2006년 북한의 빙상 경기장과 스키장, 교통망, 숙박시설 등 인프라를 보러 갔다. 북한의 현실적 여건으로는 동계올림픽 경기를 여는 게 불가능했다. 이 의제는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2014년 7월 갑자기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그만둘 때 여러 설과 음모론이 있었는데?

"그해 5월 감사원 특별조사국 기동감찰과의 감사가 들어왔다. 고위직 비리를 감찰하는 부서인데, 조직위원회는 그런 대상도 아니었다. 명목은 조직위 사무총장의 비리 감찰이라는데, 과거의 시시콜콜한 관사 비품 유용까지 들췄다. 사무총장을 경질하면 감찰을 끝내겠다고 해서 나도 함께 물러나겠다고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본인은 알지 않겠나? 청와대 실세의 견제를 받은 것인가?

"2013년 말 청와대 비서관급 사이에서 '김진선 위원장이 박 대통령을 팔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으니 견제를 좀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전개됐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드리는 사직인사'를 보냈다. 그 편지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 뒤로 박 전 대통령과는 통화할 기회도 없었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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