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베트남에서 코렉시트(Korexit) 시작되나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입력 2019.02.11 03:17

트럼프, 2차 미·북 정상회담서 북한과 종전 선언에 적극적
그럴 땐 유엔사 근거 사라지고 일본 내 후방 기지도 사용 못해
한·미동맹서 한국 떨어져 나오는 코렉시트 시작될까 우려돼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보름 뒤 베트남에서 열린다고 한다. 왜 베트남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전직 부동산업자답게 한국·일본·중국이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의 지원만 받으면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으며 그 생생한 사례로 베트남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반면, 김정은은 대미 담판을 통해 미군을 철수시켜 통일을 달성했던 베트남의 교훈을 살리고자 한다.

김일성은 1965년 특수무기 제조를 위한 엔지니어를 기르기 위해 함흥군사학원을 세웠다. 김일성은 개원 연설에서 '조선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미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가 개입할 것이다. 이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 당시 기습 침공으로 적화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일본, 오키나와, 괌의 기지로부터 빠르게 유엔군이 부산 교두보를 통해 물밀듯이 들어와 낙동강에서 저지당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살아난 이유다.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적화통일에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연설은 바로 이 실패 경험에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개입을 차단, 적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북한은 지난 50여년간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에 걸쳐 일관되게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했다. 2017년 말 수소폭탄 실험에 이어 화성15호 장거리 미사일 실험에 성공하여 미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순간, 놀랍게도 김일성이 말한 대로 그 위력이 발휘되고 있다. 작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고 주한 미군을 모두 집으로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일성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지 모른다. 바로 종전 선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료들의 만류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전쟁을 역사적으로 종결시키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꽂혀 있는 듯하다.

하노이에서 종전 선언을 할 경우, 유엔사령부의 근거가 사라진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 침공을 격퇴하기 위해 유엔안보리 결의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한국전쟁이 종결되면 더 이상 유엔사가 존속할 근거가 사라진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중 일본과 협정을 맺어 일본과 오키나와 7개 기지를 자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엔사 후방 기지들을 자유 사용할 근거가 없어진다. 바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게 하여 김일성의 적화통일 기도를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던 기지들이다. 유엔사령관이기도 한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은 얼마 전 한 주한 대사들의 모임에서 유엔사가 해체되면 군사적으로 일본 내 후방 기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유사시 한국 방어가 불가능해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정부는 종전 선언이 정치 선언에 불과하고 유엔사나 주한 미군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얼마 전 김정은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 선언을 위한 연대를 강화했다. 또한 국제법 전문가인 김성 외무성 조약국장을 일약 유엔대사로 부임시켰다. 북한은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 본토 공격 능력을 배경으로 외교와 국제법을 총동원하는 집요함을 보인다.

미국의 목표는 축소 지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서 싱가포르회담 이후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로, 그리고 2차 회담을 앞두고 '미국민의 안전'이 최종 목표라고 한다. 조셉 나이, 그레이엄 앨리슨 등 미국의 대표적 전문가들은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며 현실적으로 미 본토의 안전을 우선하여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 밝힌 대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실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보유국의 국제 의무를 지키고 미 본토를 공격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기시킨다면 미국의 안전은 확보될 수 있다.

국내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2차 정상회담의 어떤 합의든 무조건 대성공으로 포장할 것이다. 한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70여발에 달하는 핵탄두, 1000발의 중단거리 미사일 등 기존의 핵무기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제재 완화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진다면, 북한 핵보유가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 동맹을 중시하고자 하는 국내 입지는 약화될 것이다. 2차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한·미 동맹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코렉시트(Korexit) 현상이 일어날지 모른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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