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독립의 함성, 民國의 씨앗을 뿌리다

이한수 기자
입력 2019.02.09 03:00

책으로 읽는 독립운동

올해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다. 전문가 4인이 독립운동 관련 논픽션·연구서·소설 등을 3권씩 추천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우리 근대사의 뿌리를 읽는 일이다. 일부 절판된 책도 있지만 도서관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도 될 의미 있는 책들이다.

[실패의 역사, 그 속에서 우리를 보라]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정식의 '한국민족주의의 정치학'은 한국 민족주의 생장(生長)의 역사를 밝힌 최초의 연구서다. 조선왕조 붕괴 과정(1876~1910)에서 탄생한 민족주의와 그 유산, 일제 식민 통치와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세우려 한 3·1운동(1910~1919), 임시정부 수립 후 전개된 국내외 독립운동(1919~1945)에 대해 연대순으로 서술·평가한 이 책의 학설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17세기 실학자와 19세기 개화파는 물론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민초들도 민족주의 대두의 주역으로 호명(呼名)함으로써 한국사를 움직이는 주된 힘을 밖에서 찾는 외인(外因)론을 논박했다. 그럼에도 민족주의 형성에 미친 서구와 일본의 영향도 지적함으로써 균형을 잃지 않았다. 다음으로 서구를 증오한 제3세계 지식인과 달리 우리 민족주의자들은 따라 배워야 할 표상으로 보았음에 주목해 그 특수성을 부각했다. 또한 3·1운동 이후 몇몇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경도된 이유가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서구 열강의 무관심이 촉발한 환멸 때문임을 밝혔다.

식민 지배가 우리 민족주의 형성에 긍부(肯否) 양면의 영향을 끼쳤으며,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독립운동이 민족의식의 배양과 저항의 지속이란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함도 지적했다.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번역본(한밭출판사)이 1982년 나온 이후 애국심에 호소하던 전통적 독립운동사 연구에 식상해 있던 386세대 소장학자들에게 큰 지적 충격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출간 56년이 지난 오늘 왜 이 책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민족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국제사적·비교사적 시각에서 한국 근대사를 조명한 이 책이 주는 깨침과 울림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학계의 통설은 조선 후기에 '근대 지향적 사상' 실학과 자본주의의 싹이 이미 돋아났고 고종도 근대화에 매진한 계몽 군주로 본다. 나아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탄생으로 대한민국은 이미 건국되었고 일제 패망의 주된 이유도 연합국의 승리보다 무장 독립 투쟁에서 찾는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실패의 역사 속 우리 몫의 책임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다양한 세력이 이끈 항일운동]

전봉관·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한두 권의 책으로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의 역사를 기술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척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항일 운동은 강점 35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유림 등 거의 모든 종교계가 관계되었고, 무엇보다도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이념적으로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다양한 단체와 인사들이 '항일'과 '국권 회복'이라는 깃발 아래 투쟁했다. 항일 운동가나 단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항일 운동 방법도 비폭력 평화 시위, 외교, 의열 투쟁(테러리즘), 무장 항쟁 등 모두 달랐다.

이승만과 김일성, 이념적으로나 경력으로나 서로 상극인 남북의 두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으로 내세운 것은 똑같이 '항일 운동'이었다. 항일 운동의 주류나 정통성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100여 년 전 근대사의 이해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입장까지 달라지는 셈이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항일 운동의 두 축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 항일 운동은 1980년대 이전에는 금기의 영역이었고, 그 이후에는 오히려 주류로 평가하는 사학자들이 늘어났다. 그에 따라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대표적 사건인 3·1운동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지난해 유명 한국사 강사가 TV 역사 강연에서 "민족 대표들은 3·1 운동 당일 현장에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었던 태화관에서 낮술을 마신 후 자수를 하기 위해 택시를 불러 달라면서 행패를 부렸다"는 식으로 조롱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찬승의 '한국독립운동사'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좋은 입문서이다. 항일 운동을 주도한 다양한 세력들에 대해 편견 없이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세력의 연대와 통합을 위해 노력한 세력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개인적으로 항일 운동의 주류가 어느 세력이라고 생각하건, 그와 반대되는 세력이 주도한 항일 운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편협한 시각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전봉관·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조선의 신분차별 뛰어넘어 근대로]

김시덕·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읽어야 할 책으로 조선왕조 내내 차별받던 백정 집단을 해방시키자는 목표를 내걸고 1923년 봄 경남 진주에서 결성된 형평사 운동을 다룬 김중섭·김우태의 '형평운동'(지식산업사)을 추천한다.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 주민들이 넘어야 할 벽은 민족적으로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뿐이 아니었다. 양반·중인·상민이 노비·기생·백정을 차별하던 조선 왕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수구적인 조선인들 역시 극복의 대상이었다. 같은 인간이던 노비를 물건처럼 재산으로 취급하고, 백정을 동물 다루듯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양반 계급은 조선이 망한 뒤에도 옛 질서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 경상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는 양반들이 자위단·양반계 등의 비밀 조직을 결성해 양반이 아닌 계급 출신을 테러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있다. 미국의 일부 백인들이 KKK를 조직해서 노예 출신 흑인들을 테러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해방 후 세워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조선시대의 양반 중심 질서를 은연중에 긍정하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일부 양반 계급이 수행한 독립운동을 특히 강조하는 경향이 적지 않게 보인다. 필자는 양반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 이상으로 함경북도 노비 출신의 최재형이 러시아로 망명해 모은 재산으로 조선인의 독립을 지원한 것이 더욱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노비·기생·백정은 조선시대 내내 양반들에게 차별받았고, 조선 국가는 그런 차별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그렇게 자신들을 차별하던 조선 왕조를 무너뜨린 일본으로부터 조선인이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피차별 조선인들은 양반 계급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국가를 꿈꿨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선언한 미래 국가 이름이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었던 것은 인간이 인간을 제도적으로 착취하던 조선시대의 질서를 부정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할 뿐 아니라 양반 출신과 노비·기생·백정 출신도 평등하다는 자각. 식민지 시기에 한반도 주민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각성했음을 보여주는 형평사 운동은 그 어떤 독립운동보다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근본적 사건이었다.  /김시덕·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대한 독립은 일본 민중에게도 해방"]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근대의 거장 이광수·염상섭·김동인은 3·1운동을 어떻게 소설에 담았나?

김동인은 단편소설 '태형'(1922)에서 당시 감옥에 들어간 자신의 체험을 그렸다. '다섯 평이 좀 못 되는 이 방에, 처음에는 스무 사람이 있었지만, 몇 방을 합칠 때에 스물여덟 사람이 되었다. 그때에 이를 어찌하노 하였다. 진남포 감옥에서 공소로 넘어온 사람까지 서른네 사람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신의주와 해주 감옥에서 넘어온 사람까지 하여 마흔한 사람이 될 때에 우리는 한숨도 못 쉬었다.' 이 소설은 그냥 타는 듯한 목마름과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그린 것 같지만 기실 그 아래에는 작가의 독립운동 경험이 뚜렷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무렵 감옥은 운동의 물결을 탄 사람들로 일대 만원이었다.

염상섭 장편소설 '만세전'(1924)은 제목 이름 그대로 만세 전의 이야기를 다뤘다. 마지막 결말은 '조혼'한 아내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전통적 결혼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인화가 도쿄의 일본인 여급 스즈코에게 편지를 쓴다. '이제 구주(歐洲)의 천지는 그 참혹한 살육의 피비린내가 걷히고 휴전조약이 성립되었다 하지 않습니까. 이 나라 백성의, 그리고 당신의 동포의, 진실된 생활을 찾아 나가는 자각과 발분을 위하여 싸우는 신념 없이는 우리의 우정도 헛소리입니다.' 염상섭은 조선의 독립이 일본의 민중에게도 해방의 서막이 될 수 있 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광수의 소설 '재생'(1924)은 3·1운동 이후 민족적 좌절 속에서 일신의 영달과 행복에 기운 젊은이들의 행로를 김순영과 신봉구라는 두 남녀의 비극적 행로를 통해 그려낸다. 3·1운동 와중에 체포돼 3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온 봉구에게는 순영에 대한 사랑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순영은 봉구의 아이를 갖고도 거부 백윤희의 첩이 된다. 복수열에 불타 인천의 미두점에 취직한 봉구는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순영은 끝내 백에게서 버림받는데, 그들의 타락한 영혼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민족의 저항이 수포로 돌아간 뒤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나?

일제강점기 한국 소설은 독립운동을 담아내는 데 신중하면서도 민감했고 다루는 차원이 아주 깊었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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