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사랑하는 까닭? 주인을 떠받들지 않기 때문"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9.02.09 03:00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슬러 K.르 귄 지음|진서희 옮김
황금가지|324쪽|1만3000원


과학소설(SF)과 판타지의 거장(巨匠)으로 꼽혔던 여성 작가가 지난해 88세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낸 산문집이다. 작가가 여든 살을 넘긴 뒤 블로그를 통해 5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았다. 노년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사색의 언어가 농익은 삶의 향기를 뿜는다.

작가는 노년의 삶에 대해 "나는 자유롭지만 내 시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글쓰기에 바쁘기도 하지만, 고양이와 노닥거리는 시간도 사소한 '짬'이 될 수 없다는 것. 매 순간이 여유 시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이 맑고 마음이 깨끗한 90대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끈기 있고 명료한 정신으로 자신이 얼마나 늙었는지 잘 파악했다."

작가는 서양 인문학 정신에 충만한 글도 여럿 썼다. 판타지 문학은 고대 그리스의 호머가 읊은 '전쟁과 여행'의 변형이라고 짚었다. 문명의 전환을 위한 '음(陰)의 유토피아'론도 제시했다. 무한 성장을 지향한 '양(陽)의 유토피아' 대신 인류의 적응과 생존을 먼저 생각하자는 것. 또한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성적 가치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상호 의존성을 지지하면서 항상 자유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작가는 고양이 기르는 재미도 글에 자주 담았다. "내가 만약 우주의 중심과 같은 역할을 하길 원했더라면 개를 길렀을 것"이라고 했다. 고양이는 개처럼 주인을 중심으로 떠받들지 않아서 더 좋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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