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자영업자 절규에 재갈 물리나

김강한 산업1부 기자
입력 2019.02.09 03:10
김강한 산업1부 기자

서울 시내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얼마 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크게 늘자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사례로 본지 기사에 실명으로 소개됐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KBS 시사 프로그램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 작가는 A씨에게 "조선일보가 시켜서 영업시간을 줄인 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A씨는 "경기 불황으로 장사도 안 되고 인건비도 올라 죽을 맛인데 뭐가 한가해서 언론과 짜고 영업시간을 줄이겠느냐고 답했다"고 했다.

시사 프로그램이 신문 기사를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취재에 협조한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기사에 나온 내용이 거짓이 아니냐고 묻는 것은 엄청난 압박이다. A씨는 이 통화 이후 본지 기자에게 전화해 "무슨 문제가 없겠냐"고 물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는 "괜히 기사에 실명을 밝힌 것 같다"며 "장사도 안 돼 힘든데, 어떤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실명 보도를 겁내는 건 A씨뿐이 아니다. 한 소상공인 단체 협회장은 "지금 내가 요주의 인물이 돼 있다"면서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못하지만 내 이름으로는 더는 기사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각종 매체에 수차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소상공인 단체의 임원은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각종 행사에 초청받지 못하는 일명 패싱(passing·건너뛰기)을 당하고 있는데 실명으로 비판했다가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라 몸을 사린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나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은 기자들과 마주 앉아 가짜 팩트를 만들고 있을 정도로 여유 있지 않았다. 퇴직금을 털어 치킨집·편의점을 차린 자영업자, 하나밖에 없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겨우 사업 자금을 충당하는 소상공인이 부지기수다.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업주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폐업지원희망정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 문의 건수(11월 기준)는 2017년 대비 28% 증가했다.

소상공인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폐업의 큰 원인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정부는 이들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한 간부는 "우리도 할 수만 있으면 광화문광장에서 천막 농성하고 매주 집회를 열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집회하려고 장사 접으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 소상공인들은 바로 망한다. 그러니 언론에라도 하소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생계형 자영업자는 지금 벼랑 끝까지 몰려 있다. 사업이 망하면 가족 밥줄도 끊긴다. 이들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데 두려움까지 느껴야 하나.



조선일보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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