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부스러지기 쉬운 기후'의 역사적 實證 사례

입력 2019.02.09 03:11

'1500년대 美洲 전염병 소빙하기 초래' 연구 나와
지금 기후변화는 당시의 수십배 속도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추리 소설 읽는 기분이 나는 흥미진진한 기후 분야 과학 논문이 나와 소개해본다. 지난주 쿼터너리 사이언스 리뷰라는 과학저널의 온라인판에 발표된 영국 과학자들 논문이다. 한마디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 이후 유럽인들이 미주(美洲) 대륙에서 정복 전쟁을 치르면서 퍼뜨린 전염병이 전 지구적인 기후 냉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인구가 절멸(絶滅)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대부분 농경지가 빈 땅이 됐고, 거기에 나무숲이 들어차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1500년대 전후로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고 알려진 시기가 있다. 요즘 영국 런던의 겨울은 영상 7~8도 수준이지만 1608년부터 200년 동안 템스강에선 겨울 얼음 축제가 열렸다. 이 시기엔 추운 날씨 탓에 나무 조직이 치밀해 명품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탄생했다고도 한다. 논문은 소빙하기 추위가 미주 대륙에서 빚어진 인구의 '거대 사멸(Great Dying)' 탓이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군대 600명이 1519년 멕시코에 상륙했을 때 일대 인구는 2000만명이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몸에 붙여온 천연두·홍역·인플루엔자로 50여년 사이 87%가 떼죽음을 당해 270만명이 됐다. 잉카 문명 발상지 페루 일대도 천연두로 초토화돼 900만명 중 67만명만 살아남았다. 논문은 당시의 미주 대륙 인구 변화를 다룬 119개 연구를 종합한 결과, 인구 6050만명이 100년 사이 600만명으로 격감했다고 했다. 원주민들이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여러 종의 유럽 전염병이 연쇄적으로 닥쳤고, 원주민 조상이 아시아에서 건너온 소규모 집단이었기 때문에 유전 다양성이 부족해 파멸적 결과가 초래됐다.

논문에 따르면 정복 전쟁 이전 미주 대륙 농경지는 6200만㏊ 규모였다. 남한 면적의 6배를 넘는다. 이 가운데 90%가 경작할 사람이 사라지면서 버려졌다. 방치된 농지엔 산림이 들어찼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몸체를 형성한다. 이 과정을 통해 272억t(탄소 중량만 따지면 74억t)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나무의 몸통으로 옮겨갔다. 당연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떨어졌다. 실제 남극 빙하 속 기포(氣泡) 분석을 해보면 그 시대의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년 사이 7~10ppm 하락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산화탄소는 온실 기체이기 때문에 농도 하락은 기후 냉각화(冷却化)를 초래했다.

미주 대륙 인구의 90%가 사라진 결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대 10ppm 떨어져 272ppm이 됐다. 그로 인한 기온 하강은 섭씨 0.15도 정도일 것으로 평가됐다. 템스강과 네덜란드 운하에선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됐다. 인간 활동이 기후 시스템을 바꿔놓은 실증(實證) 사례다.

지금의 기후변화 속도, 강도는 소빙하기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다. 화석연료 연소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한 해 3ppm씩 상승한다. 방향은 거꾸로지만, 2~3년이면 소빙하기 100년만큼의 변화가 온다. 현재의 농도는 그 시절보다 130ppm 이상 높다. 그 결과,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했다. 기온 상승분이 아직 1도에 머물고 있는 것은 대기에 추가된 이산화탄소가 기온 상승을 일으키기까지 걸리는 수십 년 지체(遲滯) 현상 때문일 것이다. 기후 과학자들은 이대로 조금 더 진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될 거라고 보고 있다. 지구가 거대해 보이지만, 지구 기후 시스템은 인간이 가하는 충격에 아주 민감하고 취약하다는 걸 새삼 확인케 해주는 연구 결과였다.



조선일보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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