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시상식서 '꽈당'… 그럼에도 로렌스가 우아했던 이유

한은형 작가
입력 2019.02.09 03:00

[한은형의 애정만세]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201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드레스에 걸려 꽈당 넘어졌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일어났다. 그녀는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중을 향해 말했다. “제가 넘어진 게 안돼 보여서 일어나 계신 거죠. 정말 창피하네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솔직하고 의연한 말 한마디에서 그녀의 우아함을 읽는다. ‘우아함’은 의외로 너그럽고 편안한 것일지도 모른다.이미지 크게보기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201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드레스에 걸려 꽈당 넘어졌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일어났다. 그녀는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중을 향해 말했다. “제가 넘어진 게 안돼 보여서 일어나 계신 거죠. 정말 창피하네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솔직하고 의연한 말 한마디에서 그녀의 우아함을 읽는다. ‘우아함’은 의외로 너그럽고 편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플레이버즈닷컴
우아해지려면 호흡부터 바꿔야 한다고 화가인 B가 말했다. 그러면 걸음걸이, 자세, 목, 손끝의 모양 같은 몸의 선이 달라진다고. 나는 일단 '호흡'이란 말에 꽂혔다. 호흡이라. '우아한 호흡이란 뭘까?''아무래도 빠른 호흡보단 느린 호흡일 테지?''호흡을 느리게 하려면 폐활량을 늘려야 하는데… 쉽지 않겠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의 '우아론'을 듣고 있었다. 그때 생물학자 C가 반박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그러니까 우아함에 그런 도식 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B는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고, C에게는 다른 덕목들이 우아함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우아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떤가 하면, 두 쪽 다 아니다. B처럼 우아함을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C처럼 우아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아함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아주 귀하고, 아주 어렵다. 그래서 골치가 아프다. 내게 우아함이란 잘 차려입은 옷차림이나 잘 보존된 고대 유물 같은 시각적 매혹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꽉 막힌 테헤란 도로 위, 고장 난 차가 서 있고, 운전자인 중년 여자가 수신호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지 않는다.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늦어버린 약속, 기다리고 있는 친구,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저 다급하고 불쌍해 보이는 여자보다 우선순위니까. 그때 한 남자가 차를 세우고 내린다. 여자는 말한다. 너무 감사하다고, 한 시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다고, 휴대폰이 없어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고. 나는 남자의 동승자인 관계로 어쩌다 보니 이 모든 걸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자가 차를 세우고 달려갔을 때 나는 그를 비난했다. 길이 너무 막혀서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 더 늦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짜증 나지만, 저런 게 우아한 거라고.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고.

그래서 목표로 삼고 싶지가 않았다. 우아해지는 건 내게 다시 태어나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아함의 기술'이라는 책을 집어 들고 말았다. 디자인이 우아하지도 않고 제목도 우아하지 않은 이 책을 말이다. "사실 우아함은 포도주와, 아니 칵테일과 비슷하다. 절박하게 쭉 들이켜는 음료가 아니라, 뭐랄까, 이것저것 조금씩 잘 섞어 균형을 맞춘 뒤 순수하게 즐기는 음료다. 깜짝 놀랐다가 연민을 느끼는 순간이든, 로저 페더러의 경이로운 포핸드든, 아니면 한창 손님이 몰리는 저녁 시간에 조화롭게 움직이는 요리사들의 모습이든, 우아함을 목격하면 오감이 즐겁고, 기분이 밝아지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이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아함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닿을 수 없는, 어렵고, 고매하고, 자기희생적인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비평부문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저널리즘 상을 받은 무용 비평가이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20여 년 동안 예술, 스포츠, 그리고 문화 관련 글을 써오고 있다"는 이 책의 저자인 사라 카우프만 소개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워싱턴 포스트'라면 소설가 로렌스 더럴이 그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산문을 오래 연재한 지면이 아니던가. 로렌스 더럴이 다섯 번째 아내를 얻었나 보던데라며 영화 '더 포스트'에서 여자들이 모여 수군거리던 게 떠올랐다. 퓰리처상을 받은 무용 비평가가 쓴 우아함에 대한 책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장, 제니퍼 로렌스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제니퍼 로렌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발표를 들었고, 무대에 올라가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며 드레스에 얼굴을 박는다. 여기에 사라 카우프만은 이런 문장을 얹는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그녀를 좋아한다."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고, 결국 마이크 앞에 도착한 로렌스는 헉하고 숨을 내쉰 뒤 이렇게 말했다고. "제가 넘어진 것이 안돼 보여 일어서 계신 거죠. 정말 창피하네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나는 이 장면을 중계로 보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아쉬워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눈으로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일단은, 로렌스가 2013년 오스카상을 받게 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넘어졌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어쩌면 시상식장에서 로렌스는 영화에서 연기한 망가진 그녀, 티파니를 생각했으리라는 것. 또 티파니가 멋지게 일어나는 걸 떠올린 로렌스가 자신을 멋지게 추슬렀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추스른다. 그녀의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척추에 결의가 들어서자, 근육이 살짝 씰룩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되돌리는 것 같다. 여러 겹으로 층진 드레스가 그녀를 밑으로 잡아당겼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 드레스가 그녀를 다시 위로 들어 올리는 것 같다. 로렌스는 일어나서 무대 쪽으로 올라가며 어려운 상황에서의 우아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녀의 드레스는 이제 닻이 아니라 돛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무용 비평가가 쓰는 글이란 이런 것이다.

제니퍼 로렌스처럼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일단 끝내주는 연기를 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오스카를 받아야 할 것이고, 멋진 드레스를 입어야 할 것이고, 꽈당 넘어져야 할 것이고, 추스르고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에게 저렇게 솔직함을 담아 말해야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저자는 우리는 모두 우아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신경과학자들과 운동 전문가들이 사람은 처한 환경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모두 우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다시 우아해져야 한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악전고투 중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어색함으로 가득 차 있고, 우아함은 이런 세상의 중력과 긴장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책의 마지막에서 우아해지는 방법으로 저자가 꼽은 것들에는 이런 게 있다. '관용과 연민을 실천해라.''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라.''깐깐하게 굴지 마라.''너그러워져라.' 다시 마음이 어두워진다. 우아한 남들에 대해 읽을 때는 나도 오감이 즐거웠는데.   

조선일보 Y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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