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목숨 걸고 장사하는 소상공인을 모른다

이진석 사회정책부 차장
입력 2019.02.08 03:15

장사는 손님 받는 재미가 藥인데 지난해 廢業만 100만명 넘을 듯
최저임금 과속 引上 조절 없이 '언 발 오줌 누기'식 처방만 하나

이진석 사회정책부 차장

잠복근무를 하다 얼떨결에 치킨집 사장이 된 마약반 반장과 마약 조직 두목이 혈투를 벌인다. 설 연휴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극한 직업'의 마지막 장면. 정직(停職) 중이라 '경찰 아니라 닭집 아저씨'라면서도 죽을 둥 살 둥 달려드는 마약반 반장과 주먹을 주고받던 마약 조직 두목이 묻는다. "닭집 아저씨라면서 왜 이러는 건데." 대답이 이렇다. "니가 소상공인 X나게 모르는구나. 우린 다 목숨 걸고 해." 2시간 가까이 배꼽 잡게 만들다 막바지에 튀어나온 이 대사가 통렬했다. 600만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다 '목숨 걸고' 장사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법정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해부터 각종 정부 행사에 초청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내는 청와대 만찬에도 빠졌다. 정부 입김 닿는 경제 관련 위원회에서도 제외됐다. 그 자리를 청와대 자영업 비서관이 만든 자영업자 단체가 차지했다. 작년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인상)은 죄가 없다"는 집회를 열었던 단체다. 거슬리는 소리 하다 미운털 박힌 단체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정부 감싸고, 잘한다고 말해주는 소상공인들 모임으로 어깨가 기울었다. 정부에서 찬밥 취급받는 소상공인연합회의 회장은 "회원들이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한다'는 영화 대사 얘기를 많이 한다. 청와대나 여당 사람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7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하층 자영업자 소득은 임금 근로자보다 못한 실정"이라며 "이들을 자기 노동으로 자영업을 하는 '자기 고용 노동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고, 독자적 산업정책 영역으로 보려고 한다"고 했다. 뭐가 좀 달라지려나 싶었다. 그런데 고작 청와대에 자영업 비서관 자리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불만이 폭발한 것은 경기는 죽어가는데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올렸기 때문이지 자영업 비서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는 최저임금 과속 인상 부작용은 3조원의 일자리 안정자금 풀면 해결된다고 했지만, 애당초 그럴 리 없었다. 신용카드 수수료 낮춰 준다고 카드사들 팔 비틀고, 임대료가 문제라고 손가락질하고, 프랜차이즈 갑질 막아준다고 부산도 떨었다. 7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추가 지원책도 발표했지만 자영업자 단체에서는 '동족방뇨(凍足放尿)'라고 했다. 언 발에 오줌 누면 어떻게 되는지 세상이 다 아는데 이 정부는 모른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잘돼야 웃는다. 손님 받는 재미가 만병통치약이라 손님이 늘면 덕지덕지 파스 붙인 어깨가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부에서 나눠주는 이런저런 지원금 받아 연명이나 하려고 장사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세상에 제일 슬픈 광경 가운데 하나가, 늦도록 불을 켜놓고 있지만 테이블은 모두 비어 있고 한구석에서 가게 주인이 TV를 올려다보고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지금 이 나라 노른자위 상권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상 최초로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터키·멕시코·칠레 등 4개국 정도다. 회원국 평균은 15%인데 우리는 26%나 된다. 자영업자 문제는 최저임금 속도 조절하겠다는 약속 지키고, 기업이 일자리 늘리게 해서 국민 지갑 불룩하게 만들어주면 해결된다. 어려운 일 아니다. 1년 반 동안 해온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 목숨 걸고 장사하는 것보다 한참 쉬운 일이다.



조선일보 A31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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