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손석희 논란, 그 참담함의 본질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02.07 03:17

공인들의 사생활 가차없이 까발렸던 언론인 손석희, 비판의 칼이 자신 향하자
상식 밖 변명하며 숨어… 앵커의 사생활 문제에 방송사가 나서는건 비상식적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손석희 JTBC 대표의 폭행·뺑소니·배임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이 사태를 둘러싼 일부 대중의 관음증에 동참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공인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복잡한 법리 논쟁에 끼려는 의도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저널리즘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번 사태를 참담한 심정으로 주목한다. 그 이유는 이 문제가 '손석희'로 표상되는 비판 언론의 정당성, 보다 근본적으로 언론자유의 윤리적 책무성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공인으로 분류된 타인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법적 자유를 향유한다. 우리 법 역시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두텁게 보호한다. 공무집행과 직접 연관이 없는 사생활의 경우에도 '공직자의 자질, 도덕성, 청렴성에 관한 사실'에 대해서는 비판이 허용된다(헌법재판소 2013.12.26. 선고 2009헌마747 결정). 명예훼손의 구성 요건에 해당돼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제310조). 심지어 진실 보도가 아닌 경우에도 언론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이를테면 정확성을 위해 노력한 정황)가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대법원 1996.8.23. 선고94도3191판결)된다.

하지만 언론인 자신의 허물에 대해선 어떠한가? 언론이 법의 특별한 보호 아래 타인의 허물은 자유롭게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면 세상에 이렇듯 불합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범인(凡人)들 사이에서도 타인에 대한 비판은 스스로 엄격하고 올바른 만큼 정당화된다. 하물며 언론인이 감시와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최소한 같은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댔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언론에 신뢰·권위를 부여하고 비판할 힘을 주는 원천은 법에 앞서 이 윤리적 정당성(倫理的 正當性)이다. 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한 언론은 비판할 수 없고, 비판할 수 없는 언론은 죽은 언론과 다름없다.

이 맥락에서 이번 사태를 윤리적 정당성의 차원이 아닌 진실게임·법적 다툼으로 몰고 가는 손석희 대표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하기 그지없다. 지난 수년간 그는 우리 사회에서 신뢰도 및 영향력 1위의 언론인이었다. 극심한 신뢰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언론을 지탱하는 보루 같은 존재였다. 대중은 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움직였다. 이러한 지지를 토대로 그는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공인들의 사생활 및 윤리적 허물을 거침없이 파헤치고 비판했다.

당하는 이들 입장에서 이런 비판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가늠조차 어렵다. 몇몇 사례들이다. 지난 탄핵 정국 당시, 그의 진두지휘하에 미용·성형 같은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잘잘못을 떠나 이를 지켜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을 것이다. 성폭력 재판이 진행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유사한 방식으로 성추행 가해자로 몰렸다가 최근 승소한 박진성 시인 사례처럼 복잡한 퍼즐 같은 사건에서 일방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 유력 정치인이며 문화계 인사를 몰락시킨 일은 또 어떤가. 이 모두가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완결한 손석희"만이 가능한 비정한 여론 재판이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공격적 저널리즘의 가치를 부정하려 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작두 위의 무당처럼 위태롭지만 신명을 다하는 담대한 언론이었다. 문제는 사생활의 일각이 드러나 자신이 해온 말과 행동의 칼날이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보인 처신이다. 그 결정적 순간, 손석희 대표는 타인들을 비판해온 윤리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명예를 지키는 대신, 상식을 벗어난 애매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의 표현대로 "긴 싸움이 될" 법적 다툼의 뒤에 숨었다.

그는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린 품위 있게 갑시다"라고 했다. 손석희 대표는 이런 식으로 그가 생각하는 "품위"를 지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 언론인에게 생명 같은 윤리적 정당성과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JTBC는 '모든 가짜 뉴스 작성자와 유포자, 이를 사실처럼 전하는 매체에 대해 고소를 통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쯤 되면 이 일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한 방송사가 개인을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몸이 떨려온다. 언론사상 초유의 스캔들이 시작되었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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