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낮은 눈높이'가 문제다

김영진 경제부장
입력 2019.02.07 03:14

"성장률이 마이너스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정권 내 인식
대통령 '갈 之'자 경제 행보는 눈높이 정상화해야 바뀔 것

김영진 경제부장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갈 지(之)'자다. 신년 기자회견에선 "고용이 나쁘니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반성하는가 싶더니 "정책 기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실패한 소득 주도 성장에 다시 집착했다. 기조 유지 근거로 문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이 경제 발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사실과 다른 얘기를 꺼냈다. 작년 성장률이 2.7%인 우리나라는 미국(2.9%)보다도 낮다. 재벌 총수들을 불러다 놓고선 "기업 투자를 신속히 지원하겠다"며 당근을 던지더니 공정경제전략회의에선 "대기업과 대주주의 탈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재계에 채찍을 들었다. 다음 날 대전 경제 투어에선 "정부는 (기업에) 간섭도, 규제도 하지 않겠다"며 돌연 친(親)기업으로 돌아섰다.

고용 참사에 투자 실종으로 경제가 내리막인데, 문 대통령은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엉뚱한 경제지표를 곁들여 자신감마저 보이는 청와대의 경제관을 보면 '자기 최면'에 걸려 신기루를 찾는 것 같다. 일각에선 문 정부가 경제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이란 얘기도 한다. 하지만 역대급 최악인 경제지표들마저 부인할 순 없다. 정부 당국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문제는 경제 상황을 보는 눈높이가 한참 아래로 향해 있다는 데 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관료는 "우리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나라가 망할 정도도 아니다. 잠재성장률(2.7~2.8%)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경제 성장률(세계은행 기준·작년 3.0%)과 큰 차이도 없는데 뭐가 문제인가"라며 위기로 보는 게 오히려 문제라는 식으로 반문했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깊었다는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올 초 인터넷 방송 발언은 청와대의 경제 위기 인식을 보여준다. 김 전 보좌관은 "우리 경제가 4~5% 성장률을 보이지 못한다고 위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경제를 모르는 것"이라며 누구도 말하지 않은 수치를 제시하면서 문 정부의 경제 참사를 정당화하려 했다. 잠재성장률을 밑돌 게 우려될 정도로 경제 체력이 악화되면 위기 징후로 보는 게 전문가들 견해인데, 이 정부는 국가 부도의 IMF 외환 위기급 퍼펙트스톰이 다가와야 경제 위기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경제 좌표를 잘못 읽으니 대책도 구태의연하다. 연초부터 세금으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 설 민생 안정 대책에 처음으로 정부 비상금인 예비비와 특별교부세 900억원을 동원했다. 부진한 투자도 결국 혈세를 동원한 토목사업으로 받치기로 했다. 지역별 나눠 먹기로 끝난 예비 타당성 면제 사업 24조원 가운데 20조원가량이 SOC(사회간접자본)에 퍼부어진다. 세금도 언제까지나 넘치는 게 아니다. 반도체 수출이 올해부터 꺾일 것이기 때문에 법인세에 반영되는 내년부턴 세수가 크게 줄 것이란 게 세제 당국 분석이다.

만신창이가 된 경제 상황을 보는 눈높이부터 정상화해야 하고, 이젠 위기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해법도 보인다. 노동 유연성 확대 등 노동 개혁과 구조 개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남는 재정으론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위기에 대비해야 할 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진화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준(중앙은행) 의장은 올 초 '금융 위기 10주년 좌담회'에서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최악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위기를 이기기 위해 뭉쳤고 그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 경제 상황도 대처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마련해 놨는가. 우리 리더십은 위기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자답(自答)해보기 바란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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