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궤변도 앞뒤 맞아야 속는다

최승현 정치부 차장
입력 2019.02.02 03:04
최승현 정치부 차장
서영교 의원과 성창호 판사. 이 두 사람을 통해 집권 여당의 사법부에 대한 폭압적이고 이중적인 권위 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자 성 판사를 '양승태 적폐 사단의 일원'으로 낙인 찍었다. 이번 판결은 '그들의 조직적 저항'이라고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 정부를 흔드는 시도는 국민에 의해 또다시 탄핵당할 것"이라며 성 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런데 성 판사를 '적폐'로 모는 근거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과거 '사법 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파견 근무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사법 농단'과 관련해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성 판사의 관여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이 헌법의 핵심 가치인 나라에서 대통령 최측근에 대한 판결이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당 판사를 쫓아낼 수 있다고 위협하고 사법부 전체를 '물갈이' 대상으로 몰아붙인다. 군사독재를 연상시킬 만큼 공포스러운 여당 행태다.

더 당혹스러운 건 이들이 불과 10여일 전 불거진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민주당이 '적폐 사법부' 핵심으로 지목하고 있는 임종헌 전 처장은 국회 파견 판사로부터 서 의원 청탁을 받았다. 총선 당시 서 의원의 연락사무소장을 지낸 지인의 아들 A씨가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자 죄명을 공연 음란으로 바꾸고 실형 대신 벌금형으로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이 청탁은 담당 재판부에 전달됐고 A씨는 징역형을 피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밑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성 판사 판결을 대대적으로 비난하며 탄핵까지 거론하는 여당이라면 '적폐 사법부'와 실제로 재판 거래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 의원은 진작 제명 조치에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민주당은 서 의원에 대해 원내수석에서만 물러나게 했을 뿐 아무런 징계도 논의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해당 의혹에 대해 당초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던 서 의원은 최근 주변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어려운 청년을 도운 것"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을 새 강령으로 삼은 것 같은 요즘 여당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궤변도 형식적으로는 앞뒤가 맞아야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법이다. 지금 성 판사 탄핵을 언급하는 여당 논리라면 서 의원 제명 절차는 일찌감치 시작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리 없으니 '철면피' 같은 여당이 '제 무덤을 파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일보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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