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스토리] 연두교서 민주당 연설자 '40대 흑인 여성' 에이브럼스

전효진 기자
입력 2019.02.05 09:00
"아이디어, 추진력, 그리고 배짱’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미 역사상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조지아 주지사에 도전장을 냈던 민주당 스테이시 에이브럼스(45)를 요약하는 세 단어다.

에이브럼스는 당시 내무장관을 역임한 공화당의 현역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에게 7%포인트 뒤져 패배했지만 포기란 없었다. 3개월 후인 오는 2월 5일(현지 시각) 그는 하원 의회장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 형태로 진행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연두교서)이 끝난 후 연단에 오른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불’을 놓을 대응 연설자로 40대 유색인종 여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를 노렸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2018년 11월 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배짱 두둑한 10대 흑인 소녀, 가난 때문에 정치를 생각하다

에이브럼스는 위스콘신 주(州) 미시시피 근처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소에서 일했던 아버지와 특히 대화를 많이 했다. 노동자 계층이었던 부모님은 국가에서 보조받은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면서, 공공 서비스와 시민 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가 퇴근길에 돌아오지 않아 에이브럼스가 그를 찾으러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노숙자에게 코트를 벗어준 상태로 길에서 덜덜 떨면서 "네가 올 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코트를 벗어줬다)"고 말했고, 이때의 기억은 추후 에이브럼스의 정치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올바른 정치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족을 보살피듯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이브럼스는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을 따라 조지아 주(州)로 이사해 명문 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아본데일 고등학교에 진학해 흑인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했다. 그는 유능한 인재들이 모이는 스펠만 대학으로 진학한 뒤, 국회의원 선거운동 연설문 작성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의 인생을 다시 한번 바꿀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1991년 LA 흑인 폭동의 도화선이 된 이른바 ‘로드니 킹 사건’(Rodney King riots)으로 대학교가 폐쇄된 것이다. 건설 노동자이던 흑인 로드니 킹은 1991년 3월 3일 과속 혐의로 체포되기 직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소속 4명의 경관에게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은 경관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에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2018년 11월 5일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브럼스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조지아주 애틀랜타 첫 흑인 시장이었던 메이너드 잭슨을 향해 맹비난을 쏟았다. 에이브럼스는 "당신은 (흑인을 대표하는) 젊은 시장이면서도, 젊은이들을 위해 충분히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6개월 뒤, 에이브럼스는 잭슨 시장 사무실에서 청년 일자리 관련 업무를 봐달라는 연락을 받아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에이브럼스는 예일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땄고, 한 법률사무소에서 세무사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29세의 나이로 애틀랜타 변호사로 취직해 정부 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에이브럼스의 주요 관심사는 비과세 구조, 헬스케어, 공공 부문 재정 등이었다.

◇ 세무사·사업 경력 살려 정부 예산 개혁까지

2005년까지만 해도 조지아에서 공직에 선출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가 2006년 조지아주 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면서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1년 에이브럼스는 소득세를 인하하는 대신 케이블 서비스 판매세를 올리면 전체 세금 순수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이 이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자, 직접 세금 계산 데이터를 집으로 가져가 조지아주 거주자 82%가 내는 세금의 순수익이 증가한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는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에이브럼스는 정부 개혁을 위해서 공화당과도 협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범죄율을 억제하면서 교도소 비용을 절감시키는 ‘범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공화당원이었던 네이선 딜 당시 조지아주 주지사와 손잡고 업무를 추진했다.

그의 협력은 교육제도 개혁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 네이선 딜 행정부와 함께 학생들을 위한 1%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인 ‘희망(hope)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다. 조지아주가 일반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 액수를 줄이고 대출금 자원을 마련한 것이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2018년 11월 6일 애틀랜타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2006년 조지아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 헬스케어, 공공재정 부문에 관심을 가지고 일했다. /연합뉴스
2012년 그는 40대 미만의 젊은 공직자로서, 지역사회 공공부문 혁신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존 F 케네디 뉴 프런티어 상’을 수상했다. 영국 타임지는 ‘조지아 역사상 가장 많이 세금 인상을 막아낸 인물’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에이브럼스가 이렇듯 다양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변호사이면서도 세무사, 기업가로서 활동한 여러 경험 때문이었다. 에이브럼스는 과거에 영유아를 위한 음료 회사인 ‘노리시’를 공동 창업했고,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 연계 서비스 회사 ‘나우’(NOW)를 차렸다. 이 밖에도 법률 컨설팅 회사인 ‘세이지웍스’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며 미국 여자 프로농구(WNBA)팀인 애틀랜타 드림을 고객사로 두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다.

◇ "다시 링으로 돌아오겠다"...2020년 상원 선거 출마 가능성

"조지아, 너를 위해 내가 간다!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줘!"

지난해 11월 에이브럼스가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에 도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원 사격을 위해 선거 막판에 조지아를 찾기도 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도 방송 출연을 접고 에이브럼스 후보 지원에 ‘올인’해 화제가 됐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오른쪽)가 2018년 11월 1일 미 조지아주 매리에타에서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나선 흑인 여성 후보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왼쪽) 지지 연설을 한 뒤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 주지사 후보인 브라이언 켐프 지원에 나섰다. 에이브럼스는 선거 이전부터 상대 후보인 켐프가 선거를 관장하는 주(州) 국무장관직을 유지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했고, 투표일 이후에도 선거 과정의 부실 관리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했지만 접전 끝에 결국 7%포인트 차로 패했다.

에이브럼스는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며 "승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켐프 후보한테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못 박았다. 이어 선거를 부실하게 관리한 조지아주를 상대로 조만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의사도 밝혔다.

선거가 끝난 뒤 에이브럼스는 2020년 상원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8일 CNN 방송 프로그램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서 2020년 상원 선거 출마 의향에 대해 질문받자 "내년(2019년)에는 일반 시민으로서 보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진정으로 공직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에이브럼스는 이어 "무엇을 할지, 정확히 언제 어떻게 할지 확신할 순 없다"며 "지금은 내게 낮잠(휴식)이 필요하지만 다시 링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20년 상원 선거에서 에이브럼스가 현역 데이비드 퍼듀 공화당 상원의원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포기하지 않는 배짱, 올해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직후 민주당의 공식 입장을 발표할 대응 카드로 에이브럼스를 내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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