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 대신 드레스 입은 男배우, 레드카펫 공식이 바뀌었다

김은영 기자
입력 2019.02.01 10:00
치마, 하이힐, 꽃무늬 스카프 품은 남자의 옷
성별 구별 없는 성 중립 패션 뜬다

레드카펫 위의 에즈라 밀러와 코디 펀./인스타그램
그동안 영화제나 시상식 레드카펫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화려한 드레스와 반짝이는 액세서리로 치장한 여배우들은 디즈니 만화 속 공주처럼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남자들은 무채색의 턱시도와 정장으로 시상식을 보좌하는 정도.

◇ 벌칙인가요? 취향입니다...여성복 입는 남자들

레드카펫 룩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지난달 6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턱시도를 벗어던진 남자 배우들의 옷차림이 주목받았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재킷 대신 보석으로 장식한 하네스(Harness·마구처럼 몸에 두르는 안전띠)를 착용한 채 레드카펫을 밟았으며, 드라마 ‘지아니 베르사체의 암살’에 출연한 코디 펀은 어깨가 선명하게 드러난 반투명 셔츠에 통바지를 입었다. 굵은 컬이 들어간 헤어스타일에 하이힐 부츠를 신은 그를 보노라면, 잘생긴 여배우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면 뮤지컬 드라마 ‘포즈(Pose)’에 출연한 배우 빌리 포터는 보석 장식이 들어간 슈트에 분홍색 안감이 들어간 망토를 걸쳤다. 웬만한 여배우 드레스 못지 않은 화려함을 뽐낸 그의 레드카펫 룩은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됐다. 빌리 포터는 지난달 4일 열린 미국영화협회상(AFI) 시상식에서는 아예 황금색 드레스와 재킷을 입고 나와 화제를 모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화려한 케이프 패션을, 미국영화협회상에서는 황금빛 드레스로 이목을 끈 빌리 포터./인스타그램
‘튀려고 입었다’라고 단정하기엔, 요즘 할리우드 남자 스타들의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벌칙을 수행하는 것도,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다. 예전 같으면 변태냐, 게이냐는 비아냥을 들었겠지만, 이제는 ‘멋’으로 통한다.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의 주인공으로 국내에도 내한한 배우 에즈라 밀러는 깃털 의상에 짙은 화장, 패딩 드레스로 영화 홍보를 펼쳐 패셔니스타라는 칭호를 얻었고, 힙합 가수 에이셉 라키는 할머니들이 두를 법한 꽃무늬 스카프를 곱게 두르고 나와 스카프 패션의 유행을 주도했다.

◇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흐름, ‘젠더리스’

스타들이 성별의 경계 없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에 부는 성 중립 트렌드와 관련 있다. 이전에도 치마 입고 꾸미는 남자들은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것이 주목받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는 취향과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사회가 규정한 성이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존중하자는 흐름이다. 그 이면에는 성별, 인종, 크기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 소수자와 장애인, 소수 민족을 포용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genderfluid(391만 개) #genderneutral(39만4천 개), #genderless(22만7천 개) 등 관련 태그를 단 게시물은 수백만 건에 달한다.

디자이너들은 남성복, 여성복이 아니라 그냥 ‘옷’을 만든다. 구찌, 발렌시아가 등은 남녀 구분 없이 통합 패션쇼를 선보이고, 자라, H&M 등 대중 브랜드도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매한다.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는 지난해 2월 열린 뉴욕패션위크에 ‘유니섹스’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구찌의 꽃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묶은 가수 에이셉 라키./유튜브
광고 이미지도 바뀌었다. 루이비통은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에게 치마를 입혔고, 샤넬은 가브리엘 핸드백 모델로 팝 가수 퍼렐 윌리엄스를 등장시켰다. 샤넬 트위드 재킷을 입은 GD, 구찌의 여성용 블라우스를 입은 방탄소년단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치마 입은 남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성 중립적인 변화가 포착된다. 가장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색. 여자의 색으로 인식됐던 분홍색이 남자의 색으로 조명되는가 하면,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남자는 하늘색, 여자는 분홍색 같은 고정관념을 심어줘선 안 된다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우 봉태규는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니라 아들의 행복"이라며 공주가 되고 싶다는 아들 시하에게 여자 옷을 입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경계를 무너뜨리면 창의의 범주도 넓어진다. 샤넬 재킷의 소재로 주로 쓰이는 트위드는 원래 남성복에 쓰이던 원단이었지만, 가브리엘 샤넬의 손을 거쳐 여성복이 됐고 지금은 클래식 패션의 대명사가 됐다. "아름다움은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로 결심할 때 시작된다"는 가브리엘 샤넬의 명언이 새삼 와닿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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