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배추망과 집게 들고… 내가 매주 산을 오르는 이유

박판수 부산 금정구
입력 2019.02.01 03:10
박판수 부산 금정구

얼마 전 집 가까이 있는 부산 금정산에 다녀왔다. 등산 배낭에 배추 망과 집게부터 챙겼다. 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금정산 계곡을 지나 동문을 거쳐 원효봉에 오른 후 범어사 계곡으로 내려오는 15㎞ 코스를 택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부식토향 가득한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산 내음, 계곡물 소리, 맑은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온다. 이런 맑은 기분으로 계곡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불청객이 산객을 맞으며 "어서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손짓한다. 산 이곳저곳에 버려진 쓰레기다. 계곡 한구석에서 썩어가는 쓰레기를 보면 산이 신음하는 것 같다.

산행이 이어지면서 배추 망에 쓰레기가 차기 시작했다. 물티슈, 비닐, 담배꽁초, 페트병, 우유팩, 일회용 컵, 막걸리병, 찌그러진 캔…. 계곡에 버려진 스티로폼을 망에 넣으니 금세 빵빵해진다. 묵직한 것이 6~7㎏은 될 것 같다. 이렇게 모은 산 쓰레기를 청룡·노포동 주민센터에 가져다 놓았다.

2014년 10월 중학교 동창들과 월례 산행 때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이후 한 주에 한두 번은 산행하며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다. 2012년 퇴직 후 연금 생활을 하며 그동안 빚을 진 우리 이웃과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평소에 좋아하는 산을 깨끗이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부산 지역 산부터 시작해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 영남 알프스 등 전국의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360회를 넘겼다. 산행 중 모은 쓰레기는 산 밑의 주민센터나 공원관리사무소 등에 처리를 맡겼다. 이런 '쓰레기 줍기 산행'을 다녀온 날에는 일기장에 등산 코스와 소요 시간을 기록했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본 등산객 중에는 필자를 청소부로 알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 있는 쓰레기도 치우세요" 하고 지시하기도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가져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수고하신다"며 격려해주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관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할 일을 왜 하느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요즘은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같이 산에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쓰레기를 담는 배추 망은 단골 배추집 사장이 "좋은 일 하신다"며 무료로 준다. 지난해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자손 대대로 살아가야 할 자연입니다'라는 문구를 A4용지에 써서 코팅 처리해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곳에 붙여놓았다.

지난해 초겨울 금정산 산행 때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걷다가 그 밑에 숨어 있던 살얼음판을 밟아 미끄러지는 바람에 갈비뼈를 다치기도 했다. 하산할 때 양손에 쓰레기 뭉치와 집게를 들다 보니 등산 지팡이를 쓸 수 없어 몸의 균형을 잃었던 것이다.

2016년 산악회 회원들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등지에서 트레킹할 때도 쓰레기 집게와 배추 망을 챙겼다.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굿 잡!(잘했어!)"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전 국토가 쓰레기로 뒤덮인 요즘, 과거 황폐한 국토를 살리기 위해 식목일을 제정했듯 '국민 청소의 날'을 정해 쓰레기 줍기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하나가 되어 최근 불기 시작한 비닐봉투 사용 금지 및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도 확대하면 좋을 것이다.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 필자만의 바람은 아니리라.



조선일보 A24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