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맞나' 속 터져도… 10대, 외계인 아니거든요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19.01.12 03:00

유아의 뇌 발달 연구하던 저자, 아이 키우며 청소년 뇌로 분야 바꿔

10대의 뇌

프랜시스 젠슨·에이미 엘리스 넛 지음|김성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360쪽|1만8000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로, 유아의 뇌 발달을 연구하던 저자 젠슨은 싱글맘으로 두 아들을 키웠다. 사춘기에 들어선 첫째가 머리를 온통 물들이고 나타났을 때, 그녀는 당황했다. "이 애가 사랑스럽던 내 아들 맞나?" 그러고 몇 년 뒤 이번엔 엄마 차를 몰고 나간 둘째가 불법 좌회전을 하다가 다른 차와 충돌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큰아들 사춘기를 겪은 터라 '멘붕'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숨이 나왔다. "또 시작이군."

외계인이 되어버린 두 아들은 엄마의 연구 분야를 유아의 뇌에서 청소년 뇌로 바꾸게 했다. 이 책은 엄마의 모성과 과학자의 지성이 함께 빚어낸 성과다. 저자는 10대 아이들이 반항적이거나 부모 말을 무시하는 것은 일부러 심술을 부리려 해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청소년의 성적(性的) 방황과 일탈을 호르몬 폭주 탓이라 여기는 것도 오해다. 성 호르몬은 청소년보다 어른 몸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 저자는 어른과 청소년 뇌의 충동 조절 능력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청소년의 뇌는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회백질은 넘쳐나지만 회백질을 연결하는 배선에 해당하는 백질이 어른보다 부족하다. 백질은 점차 느는데, 이 변화가 뇌의 뒤에서 앞쪽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마엽(전두엽)의 발달이 가장 늦게 이뤄진다. 문제는 이마엽이 하는 일이다. 이 영역은 통찰, 충돌조절, 위험의 판단 등 인간의 성숙과 관련된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테스토스테론이 자극하고 에스트로겐과 황체호르몬이 요동칠 때, 성인의 이마엽과 달리 청소년의 이마엽은 호르몬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러니 어제까지 깔깔대던 딸이 오늘은 종일 죽을 상을 지어도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

청소년기 뇌는 혼돈의 바다와 같다. “예”라고 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입에서 “아니요”가 튀어나온다. 왜 그러는지 자신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마엽의 미성숙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수많은 청소년이 불완전한 뇌 탓에 앞뒤 재지 않고 무모해진다. 술 마시고 수영하다가 익사하는 사태가 전 세계에서 매일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 뇌는 실수에 무심하기 때문에 남의 비극을 보고도 배우는 게 없다. 따라서 자녀를 지키고 싶은 부모는 똑같은 경고를 지겹게 반복해야 한다. 아이들은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면서도 실은 부모 말을 다 듣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자기 뇌에 각인시킨다. 학교 가는 자녀에게 매일 아침 "차조심하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것은 자식의 생명을 지키는 현명한 행동이다.

아이들이 늦게 잠들고 쉽게 깨어나지 못하는 것도 뇌 때문임이 밝혀졌다. 청소년의 뇌는 성인보다 평균 두 시간 늦게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게다가 어른과 달리 아이들 몸속의 멜라토닌은 늦게까지 남아 있다. 그러니 올빼미처럼 밤에 돌아다니고 아침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다. 청소년의 뇌는 늦잠을 자야 기민해진다.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하는 학교보다 8시 40분에 등교하는 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늦잠 자는 아이가 아니라, 일찍 일어나라고 다그치는 어른들이 문제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잘 자는 아이보다 자살 충동을 최고 2.5배 더 느낀다"며 밤 9시 30분 이후엔 아이들을 야단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곁들인다.

청소년 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나 비행을 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청소년은 자기 행동에 뒤따르는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당연히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어른 잣대로 비난하거나 처벌해선 안 된다. 미국에서 가장 어린 사형수는 1786년 "왜 내 딸기를 훔쳤느냐"고 따지는 6세 아이를 목 졸라 죽인 죄로 교수형 당한 12세 소녀였다. 10대의 뇌에 대한 무지가 부른 비극이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묻지 마 살인 범죄를 저지른 미국 청소년은 사형에 처했다. 2012년 이후엔 "인간성의 성숙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국가가 앗아가선 안 된다"는 판례가 나오며 18세 이하 청소년은 사형은 물론, 종신형도 처할 수 없게 됐다. 청소년은 뇌의 높은 가소성(plasticity·외부의 힘을 받아들여 변형되는 성질) 덕분에 새사람이 될 가능성이 어른보다 크다는 저자의 견해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청소년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다. 읽는 내내 나는 내 아이들을 얼마나 아는지 돌이켜봤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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