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끄럽고 참담한 前 대법원장 검찰 조사

입력 2019.01.12 03:13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사법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이 석연치 않다. 출발은 '판사 블랙리스트'였지만 아무리 뒤져도 블랙리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청와대 등과 교감해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는 '재판 거래'를 들고 나왔다. 새 대법원장이 구성한 조사팀은 조사 결과 '재판 거래를 인정할 만한 어떠한 자료나 정황도 찾지 못했다'며 '다른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도 형사 처벌할 일은 아니다'고 발표했다. 대법관 13명 전원도 "재판 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번엔 대통령이 나서서 '검찰 수사'를 사실상 지시했다. 새 대법원장이 자신이 조사한 결과를 스스로 뒤집고 대통령 지시를 따랐다. 전·현직 판사 100여명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심을 살 만한 문건을 만든 것은 부적절했지만 확정 판결이 먼저 나면서 재판 개입이 원천 차단됐다.

검찰은 사실을 밝히기보다는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검찰 공소장은 판사가 지적한 것만 무려 38곳의 오류가 있었다. 시간 순서 등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틀렸다. 이래서는 이번 사태가 사법부 신뢰 회복이 아니라 사법부 분열만 증폭시킬 수 있다.
조선일보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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